posted by 박과장 2012. 5. 6. 02:09

 


 2000년대 이후 제작비가 100억원 이상 들어간 영화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괴물, 디 워 이상 다섯 편이라고 합니다. 백억이라는 돈이 감이 오십니까? 살면서 한번에 가장 많은 돈을 쓴게 기껏해야 비행기표 정도인 저는 잘 감이 안옵니다만. 어찌됐건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는건 꽤 많은 사람의 미래와 생각을 짊어지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큰 영화를 만드는 일을 감독들은 꼭 축복이라고마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의 초기작들 처럼 직접 투자하거나 아는 사람들정도 선에서 책임이 멈추고 리스크가 적으면 참 다행이지만 큰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게 되죠. 여러 사람의 밥줄이 걸린 문제가 됩니다.


 처음 '괴물'의 제작소식을 들었을때 들었던 느낌은 당황에 가까웠습니다. 이미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제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순위권에 들어있었고, '이야기'에 탐닉하고 디테일의 미치는 그의 특성 상 블록버스터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아무튼 제작소식을 들은 날 부터 영화 '괴물'에 관한 어떤 사전정보도 얻지 않게 노력했습니다. 미리 알고가면 김샐것 같아서.


 그리고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뛰어갔습니다. 너무 궁금해서지요. 세상에 봉준호가 괴물이 나오는 블록버스터를 찍는다니. 저 사람 디테일 좋아하는데 CG에 만족 못해서 결국 탈쓰고 한건 아닐까. 시작하자마자 괴물이 나오는데 송강호가 이단옆차기를 날리면서, '여기가 스케일의 왕국이냐'라고 일갈하진 않을까. 혹은 주인공들이 생각보다 엄청 쬐끄만 괴물을 키워주는 영화는 아닐까? 생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더군요. 괴물은 스케일 큰 영화이면서 이와 동시에 '안티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해서 100억을 넘게 쓴 영화가 안티블록버스터일수가 있을까. 정확히 얘기하면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장르적 관습에 이단옆차기를 날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런지 풀어보지요.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주한 미군 엉아들은 버리면 안되는 포름알데히드 같이 위험한 화학물질을 처리하기 귀찮아서 그냥 한강에 풀어버립니다. 여기에 노출된 탓인지 물고기 종류의 변종으로 보이는 '괴물'은 한강에서 요상한 형태로 무럭무럭 자라나게 됩니다. 키워드 첫번째. 왜 미군이 '괴물'현상의 원인일까요? 여러분이 알고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에서 미군은 어떤 모습입니까. 대체적으로 걔들은 정의의 편에 서 있고, 때론 주인공의 소속이기도 하고, 마지막에 사건을 잘 정리해주기도 하고 그런 애들인데, 미군이 오히려 악몽같은 현상의 원인이랍니다. 딴지 걸고 시작하지요.

  

 그리고 나타난 우리의 주인공 송강호는 톰크루즈나 브래드피트가 절대 아니죠. 외모도 평균 이하인데다가, 뭐 잘하는게 있기는 합니까. 돈을 잘 벌기를 합니까. 중학생인 딸내미한테 맨날 쿠사리나 먹는 마음만 착한 아버지입니다. 키워드 둘. 주인공은 선망의 대상이 아니어라. 그 조력자인 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바쳤으나' 현실은 백수인 박해일, '실력은 있으나 새가슴이라' 맨날 금메달 하나 못따는 양궁선수 배두나. 다들 프로페셔널 하다기에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들 빠진 인물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상대하는 괴물은 국민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딸이자 조카이자 손녀인 고아성이 납치된 상황 때문에 이 나사빠진 사람들이 괴물하고 싸워야 되는 거죠. 하지만 괴물을 때려잡는 과정을 통해 모두들 성장하는 모습이 또 재미있습니다. 박해일은 유일한 재주이던 도주와 화염병 투척을 통해 괴물을 때려잡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배두나는 인생에서 가장 떨릴 화살 한방을 성공시키면서 본인의 단점이였던 나약한 멘탈을 극복하지요. 게다가 송강호는 점점 철이 들구요.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반미영화다라는 소문이 돌았었습니다만, 그냥 이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가 얼마나 따져보면 웃긴지 엿맥이고 싶었던 걸로 보입니다. 특히 강하게 변명하는 듯한 장면이 있죠. 처음 나타난 괴물에게 송강호가 한방 먹이려고 무거운 돌을 들때, 같이 돌을 들어주는 사람은 암만 봐도 미군 병사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괴물에서 굳이 '비판'씩이나 하는 부분을 찾는다면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시스템으로 사람을 지배하려는 상황 자체겠지요. 이런 비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누명을 씌워서 송강호를 잡아 가둬놓았을때, 송강호가 탈출하려는 장면에서 제일 잘 드러납니다. "노 바이러스? 바이러스 없다는거네?" 이 대사 한마디에, 그간 여러가지 정보를 차단하므로서 개인들을 암암리에 억압해 왔던 시스템의 존재가 코믹하지만 살벌하게 드러나는 거죠. 


 처음부터 끝까지 봉준호 감독이 왜 봉테일인지 섬뜩하게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 가볍다고 시치미도 많이 떼지요. 언제들어도 대단한 변희봉의 명대사. "저쪽 테이블에서~ 오징어 다리가~" 하는, 그런 장면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고아성의 빈소 앞에서 가족들이 다같이 오열하는 장면입니다만.


 주인공이 많은 영화인데다가 배우들이 다들 베테랑이라 정확히 자신의 몫을 연기합니다. 봉준호는 작정하고 송강호의 송강호스러움을 끌어냈으니, 이건 그냥 송강호로서 훌륭한 연기이고, 의외로 재미있었던건 변희봉의 연기지요. 엄숙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 볼 수 없는 나이든 남자의 연기는 의외로 삶의 질곡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웃기는 대사를 해도 슬픈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 영화로 데뷔를 한 고아성의 연기도 재미있습니다. 역시 이런 역할은 경험이 없어야 됩니다. 봉준호감독은 통제가 좀 힘들더라도 신인연기자를 쓰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그랬고.

 위기가 오면 가족은 뭉치나 봅니다. 고아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배두나가 나중에 금메달을 땄는지 안땄는지 가지고 당시에 말이 많았었지만 사실 영화라는게 그게 중요한건 아니죠. 




덧붙임 하나. 괴물 목소리는 오달수가 녹음했다더군요. 흐하하...

덧붙임 둘. 속편 계획은 엎어졌나봅니다. 강풀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다그랬던 것 같은데.


한줄평 : 그런데 누구한테나 괴물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