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9. 3. 18. 03:38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4 - 마지막)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잘 생각해보니 후쿠오카에 오랜만에 왔는데 4일 동안 나카쓰 강변을 제대로 걷지도 않았더라. 오전 12시 비행기인데 전날 과음도 하고 숙소에서 좀 미적대다 나오니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날씨가 쨍한건 좋았다. 3일 내내 비가 오거나 흐렸기 때문이다. 한강이든, 탬즈 강이든, 나카쓰 강이든 강물에 햇볕이 부서지는 장면은 늘 기분 좋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역 인근에 호빵맨 박물관이 있었다. '어린이' 박물관이라 갈 생각도 안했었는데 문득 내가 호빵맨을 봤던 시절에는 어린이 었으니까 갔어도 괜찮은 추억이지 않을까라고 잠시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평일 오전에 서른이 다 된 아저씨가 홀로 들어가기에는 좀 감정적 장벽이 있는 곳인듯.


이때부터 사진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여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권의 부재는 여행 막바지의 아쉬움따위에 감상을 낭비할 수 없을만큼 내 감정상태를 공포로 몰고 갔다. 내가 그래도 해외여행을 자주 안다니던 사람은 아닌데, 전철을 타다가 여권을 떨어트리다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직도 그 여권이 정확히 어떻게 내 손을 떠났는지 모른다. 다만 일주일쯤 시간이 지나 영사관으로 부터 내 여권이 내가 간 적이 없는 전철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왜 나는 여권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을까? 피곤함과 고단함 때문에 주의 집중력이 떨어졌기 떄문일까?


여권이 없는 지도 모르고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발권 카운터로 가다가 여권이 없어졌음을 깨닫고, 일단 항공사 카운터로 뛰어가서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크지 않은 추가요금을 내고 비행기 시간은 변경할 수 있으니, 일단 여권을 찾아오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전철역 분실물 센터에 전화를 걸어 되도 않는 일본어로 공항 역에서 발견된 여권이 없냐고 물었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을 받았다. 영사관에 전화를 했다. 의외로 나같은 사람이 많은지 간단한 서류작업을 통해 임시 여권을 발급해 줄 수 있으니 비행기 시간에 맞출 수 있게 되도록 빨리 영사관으로 와달라는 답변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다음날이 아닌 이 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만약 후쿠오카가 아닌 거의 모든 다른 도시였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가고시마 같이 작은 동네도 공항은 시내에서 차로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에 떨어져 있는데, 유독 후쿠오카는 시내와 공항이 인접해 있다. 시내 중심지에서 공항이 전철로 20여분이고, 영사관이 있는 지역까지도 공항 셔틀버스 20분+전철 3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영사관에 도착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500엔 짜리 증명사진 기계로 사진을 찍고, 20여분 정도 몇장의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하니 영사관 직원분께서 한시간 반쯤이면 여권의 역할을 하는 임시 여행증명서가 발급된다고 설명해주셨다. 집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제서야 하루종일 뭘 제대로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이 깨달았다. 배고픔과 나른함이 몰려왔다. 영사관이 있는 지역은 매우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영사관 바로 건너편에 큰 쇼핑센터가 있었다. 쇼핑센터 푸드코트에서 나가사키 짬뽕을 주문했다. 



면의 양을 무료로 대 혹은 특대로 더 넣어줄수 있다고 했는데 거절했다. 내가 항상 느끼는건데, 왜인지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인들은 소식하는 이미지로 알려져있지만, 일본 식당의 1인분은 항상 한국 식당의 그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뜨거운 국물을 속에 넣자 조금은 기운이 돌았다. 사실 영사관에 가는 길은 마음도 급하고, 일이 해결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니 정신이 하나 없었지만, 식사를 하고 나오니 꽤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였다. 집들도 좀 비싸보이고. 


여권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니 여러 상념이 머리를 든다. 그 중 재미있던 것은 해외에서 여권이 없는 나는 그냥 불법체류자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상황이였다는 부분이다. 현지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면? 나의 존재를 어떻게 규명해야 하는가? 비교적 선진국이라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본같은 국가가 아니라 열악한 국가였다면, 내가 현지 언어를 전혀하지 못한다면 나는 누가 되는 것인가? 다시 원점으로. 말하자면 잘해야 두툼한 종이뭉치인 여권의 존재 유무가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내가 홀로다니는 여행을 즐겼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관계, 출신 학교, 배경, 지역 등등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내가 행하고 말하는 '나'를 사람들이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함께 술도 마시는 경험을 하게 해주기 때문인데, 결국 그러한 배경과 맥락이 없는 나와 한국에서의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여권인 것이다. 


학부 당시에 유럽 난민 문제가 심각할 때, 유럽 정치를 가르쳐주시던 은사님께서 들려주셨던 일화가 떠올랐다. 너희가 난민이면, 새로운 땅에 발을 딛게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거같아? 자신의 신분을 없애는 거야. 어느 말을 하는지도 모른 척하고, 너를 규정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없애는거야. 다시 너를 니가 온 곳으로 보낼 수 없도록. 그런데 여권이 없어지면, 법적인 나의 존재규명이 붕괴되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될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여전히 내가 나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미친 영향력이, 내가 쓴 글이, 나의 사진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시간이 지나 세상을 떠나도 나는 계속 이곳에 있는 것일까?



아무튼 결국 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공항으로 돌아와서 한시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끊을 수 있었다. 햇수로 5년정도 사용했고, 출국 횟수로는 15회 가량의 도장이 찍혀있는 여권이 없어졌다는 것이 추억이 날아 간 것 같아 좀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말하자면 좋은게 좋은 거라고 그냥 애초에 이 여행의 목적이 그러했던 것 처럼, 1쿼터를 마치고 2쿼터로 넘어가려는 사이의 휴식시간을 거쳤으니까 새로운 여권을 들고 삶을 살아가는 일도 그리 나쁘지 않게 여겨졌다. 


아, 그리고 한국에 원래 오후 1시반쯤 도착해서 충분한 휴식 후에 저녁 8시에 출근하는 일정이었는데, 여권 소동때문에 일이 꼬이는 바람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공항철도와 택시를 이용해 출근을 했다. 하루종일 긴장상태로 있다가 긴장이 풀리자마자 출근을 해서 일을 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평소엔 그리 즐기지 않지만 땀이 쏙 빠질 만큼 매운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퇴근을 하고 집에 누워서야 한국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끝.

'id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3)  (0) 2019.03.14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2)  (0) 2019.03.13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1)  (0) 2019.03.12
시2  (0) 2018.06.04
이적 - rain  (0) 2014.07.25
posted by 박과장 2019. 3. 14. 03:59

(혹시 배경음악이 없으시다면 제가 글 쓰면서 들은 음악 링크...)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3)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서 입안이 좀 까끌거렸지만, 킨스이 여관에서의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니 묘한 아쉬움이 들었다. 아침 식사는 오믈렛과 생선구이 정식. 역시 깔끔했다. 이제, 후쿠오카 시내로 가야 한다. 쿠루메에서 기차로 30여분. 이 전날 저녁에서야 맥주를 마시면서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WBF 호텔을 예약했다. 이 정도로 무계획 해도 될까 싶었는데, 뭐 아무럼 어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예약을 직전 특가 같은 개념으로 싸게해서 더 그랬나.



내가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유일하게 모으는 물건이 있다면 베어브릭일 것이다. 한 일년 전부터였나, 나는 이 팔다리 짧은 곰 모양 인형에 함락당하고 만 것이다. 이제는 여행을 안가더라도 이베이를 뒤져서 사기도 한다. 유독 작년-올 초까지 일본에 갈 일이 많았는데, 갈때마다 한개, 두개씩 사모은게 벌써 이만큼이나 됐다. 이번 여행에서도 이 사진 오른쪽 끄트머리에 보이는 헬로키티 베어브릭을 건졌다. 



이건 베어브릭 사려고 간 후쿠오카 만다라케 매장에서 본 '저수지의 개들' 피규어. 비행기표를 싸구려로 끊어서 수화물 맡기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더라면 사올 뻔 했다. 근데 스스로 좀 웃기다고 생각한게, 이걸 보자마자 아니 이걸 누가 산다고 만들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 내가 갖고 싶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간 모순충이 아닌가 했다. 근데 저수지의 개들 재밌는 영화 아닙니까. 타란티노 날것 개짱.


이것 저것 쇼핑 좀 하고, 정신을 차리니 숙소에 체크인 할 시간이 되어 들어갔다. 숙소야 생긴지 얼마 안됐지만 워낙 유명해서 굳이 사진은 찍지 않았다. 궁금하신 분은 초록 검색창에 WBF 하카타 텐진이라고 치면 수많은 블로거들의 후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식부터 스테이크를 주는 걸로 유명하다는데 나는 이런 저런 사정상 먹지 않았다. 아무튼 숙소에 들어가니 전날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여파인지 잠이 쏟아져서, 네시부터 일곱시 언저리까지 꿀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배가 고파져 숙소 인근 동네 우동집에서 니꾸우동을 한그릇 시켰다. 한 육백엔 쯤 했던 것 같다. 꽤 큰 가게에 식사시간이였는데 손님은 나뿐이었다. 주문을 받은 사장님은 묵묵히 하지만 정성껏 천천히 우동을 만들었다. 솥은 끓어 오르고, 꽤 오래된 듯 목조로 된 가게 내부에는 정적을 깨는 TV 소리만 메아리쳤다. 갑자기 다음날 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했지? 여행 3일째인데 딱히 뭔가 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뭘 하러 왔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왔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아까 저수지의 개들 피규어를 보면서 했던 생각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나는 정말 모순 덩어리구나. 저걸 누가 사? 에서 내가 사고싶다로 넘어가는데까지 걸린 시간 10여초. 아무 것도 안하러 여행 가야지, 가서 푹 쉬어야지 하고 막상 별로 한게 없다고 느껴지니 허탈하다고 느껴지는데 걸린 시간 3일. 


물론 금방 아무렴 어때라고 생각했지만.




우동집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주인장이 한글로 긴 편지같은 글을 가게 창문에 적어놓은 술집을 발견한다. 저희 집은 여러 분이 심야식당에서 본 가게와 비슷한 곳입니다. 혼자 가게를 관리하느라 음식이 나가는 것은 느리지만 정성껏 하겠습니다. 원래 한글이 많은 가게는 왠지 접객이 뻔할 것 같아 잘 안들어가는데, 저렇게 정성껏 뭔가를 써서 붙여놓을 정도면 알아서 잘 해주겠거니, 어쩌면 말이 잘 통해서 편하기도 하겠다 라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사실 딸리는 일본어로 3일 내내 말한 것도 약간 스트레스였고. 작은 술집의 이름은 '키키'였다. 사장님은 영어에 매우 능통했다. 윗 사진은 일본에서 이 가게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스파클링 사케. 달지 않아서 괜찮았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는 소주를 싫어하지만 일본 소주는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이어 일본 소주를 마셨지만.



(실내는 이런 분위기)


적절히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농담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온더락 소주를 홀짝 홀짝 마시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모녀가 가게에 들어왔다. 솔직히 귀찮기도 해서 그냥 한국 사람 아닌 척 하고 술을 마시려는데 가게 사장님도 오 한국 사람이다 너가 나좀 도와줘 하시고, 이 손님들도 사장님이랑 커뮤니케이션이 썩 원활하지 않아서 이 집은 명란 튀김이랑 닭 튀김이 맛있대요. 저는 닭튀김 먹었는데 먹을만 해요. 라고 말을 했더니 모녀중 어머님이 어머 한국 분이시네요, 왜 아닌척 그러고 계셨어요 라고 하신다. 어...저는 아닌 척 하는게 어떻게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웃었다. 애석하게도 두 모녀가 다 술을 못드신다길래 적당히 안주랑 탄산음료를 드시고 가도록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어디랬더라, 용인에서 오셨대나.



한국에서 온 모녀도 한참 있다 떠나고, 나는 사장님께 배는 부른데 간단히 소주랑 먹을 만한 안주를 요청하니 계절 한정 메뉴라면서 봄철에만 피는 어린 순으로만든 나물 된장 무침을 먹었다. 상당히 맛있어서 무슨 풀인지 써달라고 해서 구글링 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에는 없는 종인 것 같다. 영어로는 horsetail이라고 표기하는듯. 너무 오래 죽치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것 까지 먹고 일어섰다.


(어째서 락스탁일까. 락스탁 앤 스모킹 배럴즈??)




마지막 밤이 아쉬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닭껍질 꼬치랑 츠쿠네(고기경단) 꼬치를 먹으러 갔다. 첫잔은 맥주, 둘째 잔은 희한하게 짐빔 하이볼을 맥주보다 싸게 팔길래 하이볼로 마셨다. 낮잠을 잤지만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아 그러고보니까 숙소 체크인 하기 전에 점심에 스시먹으러 갔는데 그 얘긴 빼먹었네. 동네 할아버지들이 한국에서 왔다니까 소주도 사주셨는데. 잘마셨습니다 할아부지들.



여행기 (4 - 마지막) 에서 계속됩니다.











'id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4 - 마지막)  (0) 2019.03.18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2)  (0) 2019.03.13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1)  (0) 2019.03.12
시2  (0) 2018.06.04
이적 - rain  (0) 2014.07.25
posted by 박과장 2019. 3. 13. 02:54

쿠루메-후쿠오카 여행기(2)


첫날은 여관에서 훌륭한 저녁식사에 곁들여 하이볼을 홀짝인 뒤 쿠루메 시내로 나가 칵테일을 마시면서 사장님, 스텝, 단골 커플 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되는 일본어로 나누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놀라워 한건 도대체 왜 쿠루메로 놀러왔냐는 거였다. 여긴 아무 것도 없어요, 라고 바 사장님이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아무 것도 안하러 왔어요.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안하는 건 정말 어렵던데요. 그러자 바에 있던 사람들은 대체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말이 서툰 외국인에 대한 친절인지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말 어렵지. 아무 것도 안하는 건 정말 어려워. 꽤나 오래 이야기를 나눠서 엔간하면 사진이라도 찍었을 텐데 왠지 아무 것도 안하러 와서 기념사진을 남기긴 쑥스러워 사진은 남기지 않았다. 그래도 캄파리 소다는 맛있었어요 마스터. 이 글은 못보겠지만.





비행이 짧아도 비행은 비행인지라 피곤하기도 하고, 술도 꽤 마셔서 잠을 잘 자고 일어났다. 내가 여관에 체크인 한게 일곱시쯤. 저녁식사를 하고 목욕까지 하고 바로 나선게 여덟시 반쯤.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게 열두시쯤. 평상시에는 수면 패턴이 훨씬 밀려있지만 피곤이 몰려와 거의 바로 잠들어 일곱시 반쯤 깼다. 전날 프론트에 여덟시 반쯤 아침을 차려달라고 얘기해놔서 이리저리 다다미 방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식당에 내려가니 여관 할머님이 밥을 차려주셨다. 전날만큼 화려한 구성은 아니지만, 정갈하고, 아침의 까끌거리는 입 안을 헹궈줄 된장국도 있고, 샐러드며 연어 구이 등등 입맛 돋구는 반찬이 많았다. 나 미닛메이드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오렌지 주스도 주셨다. 전날은 몰랐는데 밥은 식탁 위에 전기 밥솥을 올려주시면서 모자라면 얼마든지 드시란다. 예,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같은 게 있다면 아마 이 집의 밥일겁니다.



원체 관광지라는 것 자체가 많지 않은 쿠루메지만(사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그다지 큰 볼거리가 아니더라도 홍보물을 훨씬 잘해놓는 경향이 있는데, 쿠루메는 그마저 얼마 없더라. 아,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아름다운 도시..) 그래도 이런 저런 팜플렛에 60미터가 넘는 관음보살이 있다고 해서 관광객으로서의 본분을 조금이나마 지켜보고자 열두시쯤 여관을 나섰다. 빗줄기가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는데 일기예보에서도 잠깐 스쳐간다고 하고, 우산을 사는게 돈도 돈이지만 여행객은 짐이 늘어 불편하니 영 꺼려졌다. 사진은 저 멀리 보이는 관음보살이다. 주변 차량 크기랑 비교해보면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다. (지금 웹 검색을 해보니 풀 네임은 '구세자모대관음보살', 혹시 놀러가실 분이 있다면 JR 쿠루메 역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걸린다. 가까움.) 사진에서도 드러나지만 이때쯤 비가 꽤 내리기 시작해서 나는 온통 젖어버렸는데, 이게 사람 심리가 묘한게 꽤 젖어버리니까 또 우산 사기가 싫더라. 기왕 젖은거 뭐.. 싶어서.


가까이서 보면 더 거대하다. 그런데 입구에서 입장권(500엔)을 구매하는데 직원분이 관음보살님의 뒤에 ~~~~가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그게 뭔지는 일본어가 짧아서 잘 못들었는데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건지 가보면 되겠지라고 가보았더니...



이 사진은 놀랍게도 관음보살님의 몸통 안이다. 그니까 저 관음보살이 계단을 빙글빙글 올라가는 일종의 전망대 같은 거였다. 관음보살의 뒷편에는 이 계단 통로의 입구가 있었다. 끝까지 아픈 다리를 이끌고 올라가면..




이런 뷰를 볼 수 있다. 다소 비싸다고 생각했던 입장권이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놀랍게도 도로 내려오자 지하로 이루어진 시설이 있었고, 그 곳에는 불교 전통의 극락과 지옥을 묘사해놓은 박물관과 시설이 있었다. 특히 이 지옥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사진 촬영 하지 말라고 써있어서 딱 한장만 찍었다. 기억에 남기려고)


일단 처음에 들어가면 손을 얹는 틀이 있다. 그곳에 손을 얹으면 염라대왕님이 너는 무슨무슨 지옥에 가야 한다고 선언함. 그리고 뒤를 지나가면 온갖 지옥들에 대한 묘사가 되어있는데, 이게 불이 꺼져있다가 사람이 들어가면 센서가 인식되서 팟 하고 불이 켜지면서 저 인형들이 움직인다. 혼자 갑자기 이런걸 보니 좀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지옥 코스가 끝나면 다시 손을 얹는 틀이 나오고 어느 동물로 환생할지가 나온다.

나는 고양이였다. 비를 맞아서 길고양이같았나. 아무튼 아래 코스까지 다 보고 나니 500엔이면 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바람을 맞고 돌아다녔더니 뜨끈한 국물 생각이 나서 구글에서 꽤 평점이 좋은 라멘집을 찾아 걸어갔다. 버스도 있긴 있었는데 시골이라 그렇게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이날 이래저래 걸어다니니 10km 정도는 걸은 것 같다. 참고로 쿠루메가 유명한 몇개 안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돈코츠라멘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꼭 쿠루메가 아니더라도 도쿄를 비롯한 관동의 라면과 비교했을때 훨씬 맛이 낫기에 규슈에서는 라면을 많이 권한다고들 한다. 내 입에도 그랬다. 물론 한국 사람 입맛에는 대체로 짜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다시 숙소로 향하는 길. 저 멀리서 비가 그쳐오고 있었다. 평범한 주택가 풍경이지만 날이 개는 모습과 너른 풀밭에서 왠지 모를 노스텔지어가 느껴졌다. 유년기를 아파트촌이 아닌 주택가에서 보내서 그런지 이런 낮은 주택들이 연이어 들어찬 풍경 쪽이 훨씬 더 사람 사는 느낌이다. 하루종일 비를 맞다가 날이 개는 것을 목도하면서 잘 풀리지 않았던 최근 몇년도 이렇게 개어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매일 비가 오진 않겠지.





다시 숙소로. 욕탕이 갖춰저 있는데 손님도 별로 없으니 늘 개인탕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목욕 후 식사를 하려 내려오니 오늘도 진수 성찬이다. 전골 정식인데, 전날 고기를 구워먹을 때도 그렇고 개인 화로를 주는건 참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배부르게 먹고 또 술한잔 하러 시내로 나가려다가 숙소 앞 24시간 대형 마트에서 간단한 안주랑 캔맥주 몇 개를 챙겨 들어와서 천천히 마셨다.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목욕까지 했는데도 잠이 잘 오지 않아 간신히 서너시간쯤을 잤다. 딱히 어떤 생각에 꽃힌 것도, 무언가에 크게 몰두 한 것도 아닌데 이리저리 핸드폰을 하다 한국의 일들을 생각하다가 거의 밤을 새버렸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서 온 여행인데 여전히 한국의 일들을 머리에서 비우지 못하는게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도 숙소에 있던 동전 세탁기에 비 맞은 빨래 돌렸던 것을 밤새 온풍기에 이리저리 뒤집어 줬더니 깔끔히 말라있었다. 


쿠루메-후쿠오카 여행기(3) 에서 이어집니다.

'id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4 - 마지막)  (0) 2019.03.18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3)  (0) 2019.03.14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1)  (0) 2019.03.12
시2  (0) 2018.06.04
이적 - rain  (0) 2014.07.25
posted by 박과장 2019. 3. 12. 14:04

쿠루메-후쿠오카 여행기(1)


내 모든 여행이 대체로 그러했듯 이번에도 충동적으로 비행기표 가격을 보고 여행 출발을 결심했다. (왕복 10만원 가량.)

나는 비교적 일본 여행을 많이 가는 편인데, 평상시 지인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거리가 가깝고, 비행기 값이 많이 들지 않는다.

2.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3. 식당에서 실망할 일이 별로 없다.

4. (내 기준) 언어를 조금 할 줄 안다.


그러다 보니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 가고시마 등을 이미 다녀 왔다. 훗카이도는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논리적 판단 보다는 감정적 경험에 의해 일본에서는 유독 큐슈 여행을 갔을때-큐슈 짱이다 고구마 소주 존맛-에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관광지보다는 일반 주거도시로 가서 조용히 지내다가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행기표가 저렴한 후쿠오카로 간 뒤에, 후쿠오카에서 고속버스로 3-40분 가량 떨어진 쿠루메라는 동네에 있는 아침 저녁을 다 주는 여관에서 밥 다 먹고 점심때만 살짝 살짝 나갔다오는 역대 이동거리 최저, 최대 휴식의 여행을 가야겠다고 비행기 출발 전날 결정했다. 원래 미리 계획을 촘촘히 짜면 계획에서 어긋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므로, 후쿠오카에 가본적이 없는 것도 아니라 주요 관광지를 다 가봐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맛있는 일본 밥 먹으면서 2박 3일, 마지막 하루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묵으면서 쇼핑도 좀 하고 오랜만에 나카스 강가나 나가봐야겠다, 하는 정도의 허술한 계획이었다. 얼마나 허술했냐면 마지막 하루 숙박 예약을 그 전날 쿠루메의 여관에서 했으니까.



왜인지 인천공항에서는 국왕 행차를 하고 있었다. 중국 관광객들은 열심히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 중. 와중에 상감마마는 배우분이 알바하시는지 매우 미남이시더라.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 흐리다. 쿠루메(에서도 정확하게는 쥬산부라는 동네)로 가려고 고속버스를 기다리며 한참을 앉아있는다. 나를 제외한 모든 관광객들은 텐진이나 하카타로 나가는 버스를 타려고 줄지어 서 있다. 하기사 쿠루메로 간다는 말에 버스 표를 끊어주는 직원도 친절히 안내는 해줬지만 의아했는지 유학생이냐고 묻고, 일본어로 뭐라뭐라 덧붙이는데 솔직히 유학생이냐고 묻는거밖에 못알아들었다. 관광으로 왔습니다. 라고 하는데 인터넷으로도 쿠루메는 여행갈만한 동네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직원 분의 어색한 미소로 그것을 확정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종류의 어색함을 사랑한다. 관광지를 다니는 관광도 좋지만, 동네 술집에서 어 니가 이동네에 왜 왔지? 하는 표정의 아저씨들에게 이 동네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 설명을 듣는 일은 매우 즐겁다.




이건 보습학원인데, 그냥 내가 학원에서도 일하는 사람이라 신기해서 찍었다. 여기의 학원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정도? 역시 동아시아의 아이들은 수험으로 고통받는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내가 묵은 여관(료칸) 킨스이의 방이다. 가격은 미리 예약하면 더 떨어질수도 있는데 나는 아침+저녁 두끼 포함 1 박에 한국돈 9만원 정도로 예약했다. 밥을 생각하면 꽤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주변에 여행지가 없고 시내로 나가기에 한번 갈아타야 되는 교통을 갖고 있는 숙소이므로 아무에게나 추천하기는 조금 그렇고, 나처럼 밥이나 먹고 동네 산책이나 하고 맥주나 좀 까면 된다는 분들만 추천한다. 참고로 숙소 바로 앞에는 24시간 하는 대형 마트가 있다. 참, 방은 사진에 찍힌게 절반 정도고(다다미 6조로 예약) 뒤로 공간이 좀 더 있다. 욕조도 마련되어 있음.

일본의 경우 료칸에서는 숙소 가격을 1인당으로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명이 간다고 밥값만 추가되는게 아니라 가격은 그냥 두 배가 된다고 보면 된다. (호텔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음) 그래서 왠지 나는 혼자 료칸에 가면 남는 장사를 한 것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료칸에서의 첫 저녁식사 메뉴다. 료칸에 들어가자마자 슬슬 비도 오고 해서 어디 멀리 갈 상황은 못 되었다. 얼른 밥먹고 욕장에서 목욕이나 하고 자야지 했는데, 내가 사진을 대충 찍어서 그렇지 정말 식사가 잘나왔다. 일단 (한국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한 끼에 회랑 소고기를 같이 먹는 일도 그렇지만, 각종 해산물의 선도, 메뉴 하나하나의 디테일-소고기에 버터 얹어서 구워먹는것 버터 상태가 넘 좋아서 개존맛-, (사진은 안찍혔지만) 덴뿌라의 상태 등 흠 잡을데가 없었다. 역시 큐슈는 해산물이다...라고 느끼며 첫날부터 여관에서 판매하는 하이볼을 주문해서 식사와 함께 했다. 날씨는 안좋았지만, 조짐이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 했다. 아니었지만.


여행기(2)에서 이어집니다.


'id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4 - 마지막)  (0) 2019.03.18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3)  (0) 2019.03.14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2)  (0) 2019.03.13
시2  (0) 2018.06.04
이적 - rain  (0) 2014.07.25
posted by 박과장 2018. 6. 4. 16:11

심보선


형은 어쩌면 신부님이 됐을 거야.
오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형 생각이 났어.
나이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나한테 자율성이랑 타율성 외에도
신율성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쳐줬어.

신의 계율에 따라 사는 거래.

나는 시율성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해줬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거라고.
신부님이 내 말에 웃었어.
웃는 모습이 꼭 형 같았어.

형은 분명 선량한 사람이 됐을 거야.
나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나보다 어머니를 잘 위로해줬을 거야.
당연히 식구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잠들었겠지.
문들을 다 닫고.
불들을 다 끄고.

형한테는 뭐든 고백했을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형이 우리 중에 제일 슬펐을 텐데.

그래도 형은 시인은 안 됐을 거야.
두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게 시니까 말이야.

이것 봐, 지금 나는 형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형이 이 시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까?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고 할까?
아마도 그냥 말없이 웃었겠지.
아까 그 신부님처럼.

시가 아니더라도 난 자주 형을 생각해.
형이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형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가고
형이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형이 하지 않았던 사랑을 해.

형 몫까지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끔
내가 나보다 두 살 더 늙은 것처럼 느껴져.

그럼 죽을 땐 두 해 빨리 죽는 거라고 느낄까?
아니면 두 해 늦게 죽는 거라고 느낄까?
그건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그런데 형은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모르는 일이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지.
불행이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야.

만약 그랬다면 내가 형보다 더 슬픈 사람이 되고
형은 감옥에서 시를 썼을까?
그것도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 했는데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네.

형 때문에 나는 혼자 너무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됐어.
이것 봐, 지금 나는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시를 쓰고 있잖아.
문들도 다 열어두고.
불들도 다 켜놓고.

형, 정말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형,
응?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문학과지성사. 2017.

'id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4 - 마지막)  (0) 2019.03.18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3)  (0) 2019.03.14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2)  (0) 2019.03.13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1)  (0) 2019.03.12
이적 - rain  (0) 2014.07.25
posted by 박과장 2018. 5. 27. 17:3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하사탕은 이창동의 두번째 영화로, 바로 이전에 리뷰했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처럼 현대사를 겪어내는 개인의 이야기를 여러 시점에서 조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역순으로 장면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 장면은 1999년, 마지막 장면은 1979년으로 약 20년 정도의 시간 동안 60년생인 주인공 '영호'의 삶을 보여주며 왜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 초반 관객들은 영호의 행동들을 보면서 그가 내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파탄에 이르러서 결국 기차 앞에서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계속 궁금해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거대한 '왜'라는 질문에서 영화가 출발하는 것이죠. 왜 영호는 죽어야 하는가? 무엇이 그를 괴롭게 하여 어릴적 친구들 앞에서 저 난리를 치도록 만들었을까?



결국 영화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관객들은 영호는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한 소녀를 사살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소녀를 사살했다기 보다는, 그 이전의 섬세하며 사진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던 영호 본인의 자아를 파괴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영호는 전역 이후에 경찰이 되는데, 그와 애인관계이던 순임도, 그의 가족들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영호가 5.18을 전후로 얼마나 큰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고문의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의 대변이 손에 묻는 장면에서 그의 손이 더럽혀지는 장면의 상징성은 그 다음 장면에서 순임의 앞에서 홍자(김여진 분)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장면으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영화는 기차가 달리는 장면을 역재생해서 보여줍니다.(언뜻 보면 잘 모르지만, 화면 구석구석 내려야 할 꽃잎이 도로 올라가거나 하는 장면들이 펼쳐지지요) 왜 기차일까요? 기차는 정해진 역, 정해진 선로만 갈 수 있습니다. 현대사라는 거대한 바퀴가 굴러갈때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생존하기 위해 정해진 선로를 따라갈 수 밖에, 열차에 실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릅니다. 자동차라면 자신의 길을 찾아 개척해 나가겠지만요. 경찰 복무 중에 술에 취해 갑자기 군 시절의 트라우마가 폭발한 영호가 자전거를 타고 술집 안을 빙글빙글 도는 장면도 비슷한 의미를 상징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다만 기차와 자전거가 다른 점은, 기차가 정해진 곳만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는 그렇지 않지만, 결국 영호는 자전거를 타고도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맙니다. 이것은 현대사 속에서 폭력을 자행한 영호가 아무런 선택권도 없지는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폭력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의 고발로 읽힙니다. 결국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었다'는 면죄부의 부여가 아니라, '현대사라는 거대한 아픔이 있었지만, 그에게 선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이중적인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영호가 만나는 여인들은, 그 시절의 영호의 모습을 닮아 있는 또 다른 영호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한 여인과의 이별은 영호에게 이전의 영호로부터 작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순수하고 이타적인 순임과 군생활을 기점으로 달라진 영호는 홍자를 선택하고, 홍자와 똑같이 불륜을 저지르지만 홍자의 불륜과 사업실패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영호는 홍자와도 이혼하게 됩니다. 중간에 빠진 여인이 한 명 있는데요, 바로 경아(고서희 분)입니다. 군산에서 순임을 그리워하는 영호를 보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지요. 경아는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본인을 순임으로 여기고 해보라고 하고, 영호는 경아를 '순임씨'라고 부르며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둘은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경아는 선착장에서 영호를 기다리지만, 영호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경아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영호의 거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불행에 대해 스스로 사과할 수 있을뿐,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겁니다.



당시 몇몇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설경구를 장편 영화의 주인공으로 세운 건 주변에서도 많은 만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무한 신뢰가 있었다는군요. 최근 재개봉 기념 인터뷰에서도 설경구는 '영호'가 감당하기 힘든 역할이었다고 털어놓더라구요. 설경구의 연기는 춘사영화제 남우주연상등 당대의 쟁쟁한 상을 휩쓸며 인정받습니다. 사실상 설경구에게 거의 모든 비중이 맞추어져 있는 영화지만, 역시 무명에 가까웠던 문소리나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던 김여진 역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설경구의 호연을 돕습니다.






<버닝>의 종수, <밀양>의 신애, <박하사탕>의 영호 등 이창동의 영화는 구원받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그리고 어찌할 바 모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호는 기차에 뛰어들어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종수는 벤을 죽이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신애는 유괴범을 마음속으로 용서하면, 혹은 죽이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이창동 세계의 영화 철학이 우리에게 가장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박하사탕이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호에겐 잘못을 고칠 시점이, 과거의 영호로 돌아갈 수 있던 시점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덧말. 윤도현밴드의 곡 '박하사탕'은 이 영화의 OST가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 만들어졌다는군요.



posted by 박과장 2018. 5. 27. 12:5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국가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내용의 영화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흔히 연구자들도 그렇지만, 영화 감독들도 이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보통 둘 중 한가지 방법을 사용하는데요. 거대한 흐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이러한 흐름을 직접 만들어낸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 다시 말해 거대담론의 형성과정을 보여주거나, 나머지 한 방법은 시대 앞의 개인의 여정을 마치 롱테이크 촬영을 하듯 잡아내서 그 의미를 그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로 확장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죠. 전자의 경우는 최근의 한국 영화 <1984>,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이 있겠고, 후자의 경우는 이 리뷰에서 다루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작인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 이창동의 <박하사탕>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또한 후자의 이야기입니다.


런닝 타임이 4시간에 달하는 (3시간 57분) 긴 영화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요약적으로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큰 줄기를 나누어보자면, 일단 시기는 대만 계엄령 시기이고(한국의 군부 독재 계엄령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 때의 방황하는 14살 소년인 샤오쓰와 학생이지만 조폭에 가까운 집단인 '소공원파', '217파'의 대립 속에서의 학생들의 이야기가 하나겠고, 나머지 하나는 계엄령이라는 시대 속에서 여러 풍파를 맞아가고 이겨내가는 샤오쓰의 가족 이야기 일 것입니다. 


사실 학생들이 조직적 폭력집단을 만든 것 조차도 시대와 무관하다 할 수 없습니다. 한국도 7-80년대의 군부 독재를 떠올려보면, '폭력의 일상화'라는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젊은이들의 주먹질 정도는 범죄가 아닌 삶의 일부로 인정하는 사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법보다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사회인 것이고, 이를 강화하는 것은 폭력을 전시하는 국가인 것이지요.


 

그러나 지식인 출신에다가, 대만 출신도 아니고 중국 본토(상해)에서 혁명을 피해 급하게 이주해온 샤오쓰의 아버지는 이런 사회와 불화 관계에 있습니다. 대만에선 이런 1940년대 이후 외부 출신을 외성인, 원래 그에 앞서서 이주했던 사람들을 본성인이라고 지칭한다더군요. 그에게는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옛 친구에게 승진을 구걸하는 것이나, 과거에 어울렸던 친구가 혁명 분자라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가짜 진술서를 써야하는 것이나,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고문의 후유증으로,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국가의 가장이지만 가족들 앞에서 새벽녘에 뛰어나가 엉엉 우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에서 그의 이런 시대와의 불화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합니다.


'밍'이라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밍을 만나는 남자들은 모두 밍에게 반하게 되고, 영화감독은 첫눈에 캐스팅을 하려고 하지요. (참고로 유머 감각이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영화감독이 성을 내며 '이래가지고 영화가 되겠냐, 이딴걸 왜 찍냐'고 말하는 부분은 감독이 자기 자신에게 건내는 농담같은 거의 유일한 장면입니다.) 밍을 차지하기 위해 두 파의 리더들은 한쪽이 목숨을 잃는 싸움을 하게 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밍은 수동적 대상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을 두고 목숨을 걸고 싸우건 아니건 자신이 좋아하는 샤오쓰와 만남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결말은 마음이 변한 것으로 보이는(이 부분이 영화에 100% 확실하게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샤오쓰의 친구 집에 있는 밍을 샤오쓰가 보게 되죠) 밍을 샤오쓰가 칼로 살해하는 것이지만요. 왜 샤오쓰는 밍을 죽였을까요? 그에 대해 한 마디로 단언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질투 때문일 수도, 자신의 삶에 대한 혐오 일수도,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하는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서일 수도, 폭력이 늘상 상존하는 시대 때문일 수도 있지요.


영화 내내 전구나 형광등이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두운 방에서 깜빡이는 전구 때문에 그 모습이 흐려지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샤오쓰의 학교에서 아버지가 분노를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아버지가 직접 형광등을 깨버리죠. 또한 소공원파가 217파를 습격하는 장면에서는 일부러 전기를 내려서 어둠 속에서 일을 처리하는데요, 이러한 조명 처리때문에 누가 누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지가 명백히 보이지 않습니다. 실은 그 존재가 중요한 것이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시대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고발이자 묘사같습니다.



연기에 대해서는, 일단 아역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연기는 기대할 수 없겠습니다만, 장첸은 훗날 대배우가 될만한 좋은 재목임을 잘 보여줍니다. 대사처리에 대해선 제가 중국어에 조예가 없어서(아니 그런데, 어떤 언어에 대한 선입견이란건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그래서 대사를 자연스럽게 하는지 안하는지를 외국어 영화에 대해 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은가 싶어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미 배우이던 아버지와 형과 함께 출연해서 더 자연스러웠는지는 몰라도 나이에 맞지 않는 표정들을 보여줍니다.


'밍' 역할을 한 양정이의 경우는 이후로 그닥 하고싶지 않았는지 한편도 영화를 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하네요. 



OST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Are you lonesome tonight?'은 영화 내용 상에도 등장하고, 이 영화의 영어제목인 'A Brighter Summer Day'를 가사로 갖고 있습니다. 두 소년 소녀의 여름날 장면 이 제목에 맞게 정말 아름답게 촬영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리뷰에서 늘 걸작으로 불리우고,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다만 정말 보기가 어려운 영화였는데,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념으로 2017년 11월에 개봉해준 덕분에 저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4시간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posted by 박과장 2018. 5. 24. 11:32

[주의 :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버닝>은 종수와 해미, 그리고 벤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종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을 쓰려고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고 있고, 해미는 카드빚에 쫒기면서 후암동 좁은 원룸과 나레이터 모델 현장 사이를 오가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으로 보이는 그 둘은 우연히 재회하고, 해미는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다녀오면서 해미는 의문 투성이의 남성인 ‘벤’과 함께 귀국하게 되죠. 그는 종수의 표현을 빌리면 ‘개츠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젊은 나이에 아주 많은 돈을 갖고 재미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셋은 술자리를 함께하기도 하고, 벤의 친구들의 모임에 같이 가기도 하고, 종수의 파주 시골집에서 함께 대마초를 나눠피기도 하고, 기묘한 조합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해미가 사라지고, 종수는 벤을 의심하며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버닝>의 외표는 서스펜스 스릴러이지만, 실은 이 영화는 제 관점에서는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신자유주의(벤)의 인간 파괴와, 이를 간파하더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과(종수) 혹은 간파하지 못해서 타버리게 되는(해미) 구조의 문제를 지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벤의 삶은 화려합니다. 그는 항상 종수에게 당신은 너무 진지하다고 충고하면서, 좀 더 가볍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극의 초반부터 해미의 입을 빌려 등장하는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가 각각 벤과 종수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허기, 즉 본능과 재미만을 쫒는 리틀 헝거와 존재론적, 본질적 허기를 달래고자 하는 그레이트 헝거의 대립인 것이죠. 그러나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부시맨의 사회에서는 그레이트 헝거를 추구하고 높게 평가하더라도, 자본주의가 상륙한 이후에는 그레이트 헝거는 별 가치가 없어집니다. ‘글을 잘 써서’ 칭찬받은 문창과 졸업생인 종수의 아버지를 위한 ‘탄원서’가 실제로는 실형을 막지 못한다는 점이나, 대학을 나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택배를 비롯한 막일 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한편으로 재미있는 점은, 벤은 이 사실-본인의 욕구 추구가 어쩌면 더 낮은 차원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종수가 좋아하는 포크너의 소설을 사서 읽어보려고도 하고, 마지막 결말에서 종수의 일격 이후에 오히려 종수를 공격하기 보다는 따뜻하게 안아주는 듯한 자세를 취하죠. 벤이 자본주의 그 자체라는 힌트는 이외에도 더 많은데요, 예컨대 해미를 사라지게 만든 행위를 비닐하우스 태우는 일에 빗대어 말할때, 쓸모 없는 비닐 하우스가 참 많고, 없어져도 한국 경찰들은 관심도 없다고 말하죠. ‘그레이트 헝거’인 종수가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떻게 구분하는가’라고 질문하자, 그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동시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요. '나는 반포에도, 파주에도 있다'는 선언은, 스스로가 인격체라기 보단 상징임을 의미하죠.


<버닝>이 단순한 장르물이 아닌 자본주의와 인간성의 관계에 집착하는 점을 보여주는 몇가지 단서들을 모아보죠. 먼저, 벤을 추격하던 종수가 미술관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 벤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종수가 그 장면에서 바라보게 되는 미술관의 작품은 다름 아닌 용산 참사를 다룬 것으로 보입니다. 용산 참사는 자본주의의 핵심인 재산권 분쟁으로 경찰 진압과정에서 여러 명이 사망한 사건인데, 사망의 원인이 바로 화재였죠. 영화 제목은 <버닝>, 용산참사가 그려진 작품 바로 건너편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벤과 가족들. 이 정도면 매우 직접적인 상징이죠. 게다가 해미의 집은 참사가 일어난 바로 근처인 후암동인데, 후암동이라는 지명을 자꾸 화면에 노출시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종수와 해미의 고향으로 제시된 파주라는 공간입니다. 끊임없이 북한의 선전방송이 나오죠. 그러나 그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예컨대 종수와 해미가 과거에는 자본주의로부터 침략당하지 않아서 행복하게 지냈던 공간이지만, 이미 이제는 점령되었고(벤이 굳이 파주까지 올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이를 경고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북한에서는 끊임없이 방송이 나오지만, 실은 그쪽 조차도 제대로 된 해결방법은 아니며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습니다. 


이 외에도 예술가로서의 종수의 성장, 최승호 MBC사장이 분한 종수 아버지와 종수의 관계(최승호 사장이 이창동 감독의 경북고 후배라나요) 등 아직 리뷰에서도 풀어낼 떡밥이 아주 많지만, 이에 대해서는 2회차 관람 이후에 더 자세히 적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기에 대해서는 전종서의 연기에 대한 코멘트가 많던데, 대체로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 많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게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봅니다. 일전에도 리뷰에 적었던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의 조금은 비현실적인 톤이 사랑의 비극을 더욱 강조해주듯이, 어쩐지 붕 떠있는듯한 전종서의 연기톤은 안정되지 못한 캐릭터의 내면을 더욱 강조해주는 효과를 지닙니다. 이창동은 테이크를 아주 많이가서 ‘변태 감독’이라는 말까지 듣는데, 이걸 통제에 실패했다고는 전혀 보이지 않아요. 



유아인은 본인을 확실한 주연급 배우로 자리잡게 해주는 역할을 드디어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굳이 이 글에선 그의 개인사를 둘러싼 논란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요, 지금껏 흥행에 성공한 주연작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다른 강력한 주연배우들과 함께였고 그들의 연기가 더 빛났던 영화였습니다. 예컨대 <사도>는 송강호와 함께, <베테랑>은 황정민과 함께 주연을 맡았으니까요. 스티븐 연은, 한국어 연기임에도 불구하고(물론 교포 역할이지만) 자기가 해야할 것을 정확히 아는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색한 한국어가 웃길 수도 있는데, 서늘한 느낌을 주는게 비언어적인 통제가 잘 되어있는 프로페셔널로서의 강점이 잘 보이더군요.


서스펜스라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적 재미와, 넘치게 많은 상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청춘’을 다루었다는 이창동 감독의 언급은 약간 블랙 코미디로 느껴질 정도로, 이 영화에서 불타고 있는건 젊은이들 뿐만은 아닙니다. 감옥에 있는 종수의 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종수의 어머니에게도 500만원의 빚을 받으러 찾아오는 검은 옷을 입은 존재가 있지요. 아마 어머니에겐 그 존재가 ‘벤’이 아닐까요.


<이 리뷰는 2회차 관람 이후 수정할 예정입니다.>


posted by 박과장 2015. 5. 19. 14:00

 아주 답답합니다. <트라이브>를 보기 시작한 후 처음 10분 정도의 심리 상태입니다. 왜냐구요?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모든 의사소통이 수화로 이루어지는데,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자막 한 줄 없습니다. (더 정확히는, 영화 맨 처음 앞으로 자막이 없을 것이라는 자막은 나옵니다만.) 게다가 일반적인 잡음을 제외하곤 영화 음악도 없어요. 하지만 10분 여를 견뎌내면, 화면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얼개를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특별한 영화적 '체험'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에게 영화속 대사는 엄청난-혹은 엄청나다고 믿어온-것이었습니다. '드루와' 가 없는 <신세계>,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 아니, 이게 아니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대사가 없는 <부당거래>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영화의 주제의식을 한번에 정리해주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것이 대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사가 없이(정확히는 수화가 오고가지만, 그것도 우크라이나 수화이니 우리나라 관객들에겐 없다고 보는게 맞지요.) 관객들은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물론 약간의 해석 차이는 있지만, 그건 대사가 있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렇다면 영화에서 대사는 정말로 엄청난 것일까요? 아니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에서 소리나는 말이라는 것이 그렇데 대단한 것일까요?  <트라이브>는 단순한 영화적 경험을 넘어 이러한 성찰에 이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영화 스스로의 스토리를 배제하고라도 말이에요. 순전히 이러한 양식만으로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청각 장애가 있는 학생들만 다니는 기숙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학교는 사실 마피아 조직이나 다름없습니다. 학교 선생들부터 가장 어린 학생까지 앵벌이, 매춘, 강도, 절도 등 온갖 범죄를 조직적으로 운용하고 있어요. 이 조직에서 꽤 상층부에 편입되어 신임을 쌓아가던 주인공은 매춘부로도 일하는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고, 일을 방해하다 집단 내에서 말단 앵벌이의 위치로 추락합니다. 결국 사랑을 좌절당한 분노로 몇 명의 상층부를 모두 살해하고는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상당히 흔한 이야기입니다. 누아르 장르의 꽤 익숙한 이야기죠. 잘 나가던 조직원이 사랑때문에 조직에 배신 혹은 해를 끼치고, 제거되거나,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조직에 맞서서 싸우게 된다는 이야기는 한국 누아르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달콤한 인생>, <차이나타운> 같은 영화들요) 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트라이브> 가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점이라면 그 배경이 엄연한 '학교' 이고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것이 실제로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형식적 특징 말고도 사회고발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양식적 특징을 넘어 영화라는 장치로서의 특징을 몇가지 살펴보죠. 감독은 영화의 특성상 모든 배우가 비전문, 그것도 실제로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총 1년의 시간동안 SNS를 통해 캐스팅을 작업했다고 하네요. 사실 엄청난 성공이라고 봅니다. 어떤 전문 배우도 이런 연기는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등장하는 배우들 모두 하나의 감각이 좌절되어 있는 묘한 광기를 대단하게 표현합니다.


 편집과 카메라 움직임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원래 대사에 흐름에 맞춰 카메라가 움직이는게 일반적인 촬영의 기법이라면, 이들은 사실상 '온몸으로' 말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풀샷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 또한 원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관조적인 시선으로 느껴져서 사회비판적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켜 줍니다.




한줄평 : 우리가 지금까지 들었던 말소리들은 다 뭐란 말입니까?

posted by 박과장 2015. 5. 19. 09:34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1, 2, 3루의 역경을 거치고 다시 홈으로 금의환향하는 신화적인 구성도 좋고, 공 하나 하나마다 경우의 수가 달라지는 확률의 맛, “타임 아웃이 없는” 승부의 맛,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지만 결과는 모두 다른 인생의 맛도 좋습니다. 반면, 저는 한국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 번 경쟁에서 미끄러지면 이를 되돌릴 길이 요원해집니다. ‘운동만’ 하도록 평생 요구받아온 그들은 운동이라는 끈을 놓쳤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 메이져리그의 선수들이 은퇴 이후 전공을 살려 다양한 진로를 찾아나가는 것과 아주 대비됩니다. 



 영화 ‘파울볼’은 이 두가지 모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엘리트 체육의 경쟁구도 속에서 미끄러진 야구 선수들을 재기하고자 창단된 야구 구단 ‘고양 원더스’와 그 감독 ‘김성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벤쳐 재벌이 되었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이 여전해서 수익은 커녕 오히려 돈을 계속 투자해야하는 독립 구단, 그것도 선수가 잘하게 되면 프로로 스카웃 보내고 그것을 목표로 삼는 구단을 만드는 허민 대표와, 수많은 프로 구단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이러한 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김성근 감독 모두 실리, 상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일종의 성스러움을 부여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대단함을 느끼는 순간은 의외로 단순해서, ‘나같으면 못하겠다’ 싶은 결정들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곤 하죠.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감독 김성근과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입니다.

 김성근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이야기들과 책들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의 리더십은 전형적인 일본의 ‘아버지’ 그 자체입니다. 아주 혹독한, 모두가 나가 떨어질 만큼의 지독한 훈련을 시키고 선수들을 괴롭(?)히지만 선수들에 대한 강한 책임 의식, 이 배가 침몰하더라도 배에 마지막까지 타고 있겠다는 선장의 마음같은 것이 김성근의 리더십입니다. 워낙 사회에 어른의 모습이 없다는 이야기가 팽배하다보니(사실 이는 세대 갈등이 주요 원인입니다만) 이 리더십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사람들이 따지고 들기 보단 그저 좋은 쪽으로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결과가 좋으니 (고양 원더스는 꽤 많은 프로 선수를 배출해냈고, 그 이전에 맡았던 SK는 3번의 우승, 1번의 준우승을 이루어 냈으며, 현재 만년 꼴지이던 한화를 중위권에 안착시켰습니다) 별 반론이 나오기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하지만 분명 독재적이긴 하죠.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경쟁에서 도태되었던 이들이기에 다양한 직업출신이기도 하고,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야구 소년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하나, 프로 진출뿐입니다. 이러한 간절함이 별다른 대본이나 연출 없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드라마가 됩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는 뽀얀 국물의 설렁탕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심장을 뒤흔드는 이야기나 소름끼치는 반전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실이라는 형태가 주는 먹먹함, 제대로 끓인 설렁탕의 묵직함 처럼 가슴을 채워오는 그 뭔가를 기대하지요. <파울볼>을 그 점에서 썩 훌륭한 이야기 소재를 썩 훌륭햔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담아낸 설렁탕 한 그릇 같은 영화입니다. 지금은 프로가 된 원더스 출신 선수들이 앞으로 해나갈 플레이와, 한화의 감독이 된 김성근의 발걸음 역시 이 영화의 관객들이 함께 계속해서 즐겨나갈 현재 진행형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줄평: 절박한 이야기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