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9. 3. 14. 03:59

(혹시 배경음악이 없으시다면 제가 글 쓰면서 들은 음악 링크...)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3)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서 입안이 좀 까끌거렸지만, 킨스이 여관에서의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니 묘한 아쉬움이 들었다. 아침 식사는 오믈렛과 생선구이 정식. 역시 깔끔했다. 이제, 후쿠오카 시내로 가야 한다. 쿠루메에서 기차로 30여분. 이 전날 저녁에서야 맥주를 마시면서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WBF 호텔을 예약했다. 이 정도로 무계획 해도 될까 싶었는데, 뭐 아무럼 어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예약을 직전 특가 같은 개념으로 싸게해서 더 그랬나.



내가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유일하게 모으는 물건이 있다면 베어브릭일 것이다. 한 일년 전부터였나, 나는 이 팔다리 짧은 곰 모양 인형에 함락당하고 만 것이다. 이제는 여행을 안가더라도 이베이를 뒤져서 사기도 한다. 유독 작년-올 초까지 일본에 갈 일이 많았는데, 갈때마다 한개, 두개씩 사모은게 벌써 이만큼이나 됐다. 이번 여행에서도 이 사진 오른쪽 끄트머리에 보이는 헬로키티 베어브릭을 건졌다. 



이건 베어브릭 사려고 간 후쿠오카 만다라케 매장에서 본 '저수지의 개들' 피규어. 비행기표를 싸구려로 끊어서 수화물 맡기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더라면 사올 뻔 했다. 근데 스스로 좀 웃기다고 생각한게, 이걸 보자마자 아니 이걸 누가 산다고 만들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 내가 갖고 싶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간 모순충이 아닌가 했다. 근데 저수지의 개들 재밌는 영화 아닙니까. 타란티노 날것 개짱.


이것 저것 쇼핑 좀 하고, 정신을 차리니 숙소에 체크인 할 시간이 되어 들어갔다. 숙소야 생긴지 얼마 안됐지만 워낙 유명해서 굳이 사진은 찍지 않았다. 궁금하신 분은 초록 검색창에 WBF 하카타 텐진이라고 치면 수많은 블로거들의 후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식부터 스테이크를 주는 걸로 유명하다는데 나는 이런 저런 사정상 먹지 않았다. 아무튼 숙소에 들어가니 전날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여파인지 잠이 쏟아져서, 네시부터 일곱시 언저리까지 꿀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배가 고파져 숙소 인근 동네 우동집에서 니꾸우동을 한그릇 시켰다. 한 육백엔 쯤 했던 것 같다. 꽤 큰 가게에 식사시간이였는데 손님은 나뿐이었다. 주문을 받은 사장님은 묵묵히 하지만 정성껏 천천히 우동을 만들었다. 솥은 끓어 오르고, 꽤 오래된 듯 목조로 된 가게 내부에는 정적을 깨는 TV 소리만 메아리쳤다. 갑자기 다음날 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했지? 여행 3일째인데 딱히 뭔가 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뭘 하러 왔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왔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아까 저수지의 개들 피규어를 보면서 했던 생각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나는 정말 모순 덩어리구나. 저걸 누가 사? 에서 내가 사고싶다로 넘어가는데까지 걸린 시간 10여초. 아무 것도 안하러 여행 가야지, 가서 푹 쉬어야지 하고 막상 별로 한게 없다고 느껴지니 허탈하다고 느껴지는데 걸린 시간 3일. 


물론 금방 아무렴 어때라고 생각했지만.




우동집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주인장이 한글로 긴 편지같은 글을 가게 창문에 적어놓은 술집을 발견한다. 저희 집은 여러 분이 심야식당에서 본 가게와 비슷한 곳입니다. 혼자 가게를 관리하느라 음식이 나가는 것은 느리지만 정성껏 하겠습니다. 원래 한글이 많은 가게는 왠지 접객이 뻔할 것 같아 잘 안들어가는데, 저렇게 정성껏 뭔가를 써서 붙여놓을 정도면 알아서 잘 해주겠거니, 어쩌면 말이 잘 통해서 편하기도 하겠다 라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사실 딸리는 일본어로 3일 내내 말한 것도 약간 스트레스였고. 작은 술집의 이름은 '키키'였다. 사장님은 영어에 매우 능통했다. 윗 사진은 일본에서 이 가게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스파클링 사케. 달지 않아서 괜찮았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는 소주를 싫어하지만 일본 소주는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이어 일본 소주를 마셨지만.



(실내는 이런 분위기)


적절히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농담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온더락 소주를 홀짝 홀짝 마시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모녀가 가게에 들어왔다. 솔직히 귀찮기도 해서 그냥 한국 사람 아닌 척 하고 술을 마시려는데 가게 사장님도 오 한국 사람이다 너가 나좀 도와줘 하시고, 이 손님들도 사장님이랑 커뮤니케이션이 썩 원활하지 않아서 이 집은 명란 튀김이랑 닭 튀김이 맛있대요. 저는 닭튀김 먹었는데 먹을만 해요. 라고 말을 했더니 모녀중 어머님이 어머 한국 분이시네요, 왜 아닌척 그러고 계셨어요 라고 하신다. 어...저는 아닌 척 하는게 어떻게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웃었다. 애석하게도 두 모녀가 다 술을 못드신다길래 적당히 안주랑 탄산음료를 드시고 가도록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어디랬더라, 용인에서 오셨대나.



한국에서 온 모녀도 한참 있다 떠나고, 나는 사장님께 배는 부른데 간단히 소주랑 먹을 만한 안주를 요청하니 계절 한정 메뉴라면서 봄철에만 피는 어린 순으로만든 나물 된장 무침을 먹었다. 상당히 맛있어서 무슨 풀인지 써달라고 해서 구글링 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에는 없는 종인 것 같다. 영어로는 horsetail이라고 표기하는듯. 너무 오래 죽치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것 까지 먹고 일어섰다.


(어째서 락스탁일까. 락스탁 앤 스모킹 배럴즈??)




마지막 밤이 아쉬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닭껍질 꼬치랑 츠쿠네(고기경단) 꼬치를 먹으러 갔다. 첫잔은 맥주, 둘째 잔은 희한하게 짐빔 하이볼을 맥주보다 싸게 팔길래 하이볼로 마셨다. 낮잠을 잤지만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아 그러고보니까 숙소 체크인 하기 전에 점심에 스시먹으러 갔는데 그 얘긴 빼먹었네. 동네 할아버지들이 한국에서 왔다니까 소주도 사주셨는데. 잘마셨습니다 할아부지들.



여행기 (4 - 마지막) 에서 계속됩니다.











'id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4 - 마지막)  (0) 2019.03.18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2)  (0) 2019.03.13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1)  (0) 2019.03.12
시2  (0) 2018.06.04
이적 - rain  (0)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