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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1 500일의 썸머 (2009, 마크 웹 /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posted by 박과장 2012. 5. 1. 00:11

  

 <건축학개론>의 리뷰를 통해 이미 이 블로그에서는 성숙하지 못하지만 착한 남자가 어떻게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상처받았다고 믿게 되는지 이야기 했었습니다. 넵. 남자가 나쁜겁니다.

 오늘 이야기 할 영화는 건축학 개론의 이제훈보다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역이지만 사실 하는 짓은 크게 다르지 않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500일의 썸머. 여자주인공의 이름이 '썸머'인지라 500일의 그 여자의 기억 혹은 500일의 여름날 요렇게 중의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군요.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는 일을 기억하는건 계절에 대한 기억처럼 선명하지만 왜곡된 이미지를 같게 되니까요.

 우리의 주인공 톰(조셉 고든 레빗)은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본 스타일입니다. 적당한 자기애와 자기비하가 있으면서 팝 컬쳐보다는 좀 된 노래를 좋아하고, 겉치레보다는 실속있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사실 화려한 것에 대한 동경도 좀 있구요. 여자 좋아하고. 주변 친구들은 좀 더 심각한 케이스죠. 마지막 연애가 초등학교때라거나. (근데 옷은 못입는 듯 너무 잘입어서 좀 언밸런스 하긴 합니다. 이런 형들 TPO에 맞게 옷입는거 본적 없는데..)

  헌데 이 남자, 귀여운 구석이 있는게 아직도 진짜 사랑을 믿는답니다. 사실 요새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사랑의 기준은 쿨함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데 얼마나 시대착오적 생각입니까. 게다가 백마왕자에 대한 환상 비슷한 것이 있어서 언젠가 본인에게 꼭 맞는 사람이 자기 손을 잡아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 '썸머'는 자신이 예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예쁜 여자입니다. 이런 경우 자의식이 잘못된 방향으로 커지는데, 말하자면 스스로를 많이 사랑하게 되는데 그 대부분의 이유가 외모에 있는거죠. 그러다보니 공허한 내면을 채우기 위해 맘에 들지도 않는 책을 읽는다거나 음악을 좋아한다고 우기는 '교양 속물'이 됩니다. 영어로는 힙스터라고 하던데.

 톰은 직장동료인 썸머를 만나서 호감을 느끼죠. 이쁜 여자니까. 게다가 썸머는 자신이 듣는 스미스를 좋아한답니다. 세상에 스미스를 좋아하는 젊고 예쁜 여자라니. 그전까지는 그림의 떡보듯 썸머를 보았었지만 이제 톰은 썸머가 운명이 아닐까 고민합니다. 저 여자가 내 전부/운명이 되어주진 않을까. 그리고 의외로 이건 짝사랑은 아닙니다. 썸머도 톰에게 호감을 느꼈거든요. 사실 그녀가 이성을 좀 쉽게 만나는 성격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둘은 잘 되고 연인같은 관계가 됩니다. 왜 연인 '같은' 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썸머는 사랑같은 건 믿지 않거든요. lover라는 호칭을 쓰질 못하는 거죠, 본인이. 점점 더 진지해지는 톰과 관계안에 갇힐까봐 두려워하는 썸머. 결국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되고 톰은 반폐인이 되어 직장마저 관두게 되지요. 여기서 질문, 썸머가 나쁜 년이어서 톰을 버린걸까요? 아니면 톰이 멍청해서 그런걸까요?

 여하간 이후 둘은 다시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초대받아서 같이 다시 커플처럼 신나게 놀고 오지만 톰의 바람/예상과는 달리 썸머는 그냥 그를 흘러간 친구 하나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장도 관두고 인생의 끝에 몰린 것 같은 그지만 다시 전공했던 건축에 열의를 불태우며 결국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거기서 같이 면접을 본 다른 지원자 아가씨랑 잘될 것 같은 암시와 함께.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관계의 몇몇 진실은 이미 영화 '행복'의 리뷰를 통해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두루미와 여우의 이솝 우화를 생각하시면 되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접시에 담아 내놓으면 두루미는 먹기가 힘들지요. 관계라는 것이 그런 면이 있습니다. 톰의 입장에서 보면 썸머는 너무 차가운데다가 미래에 대한 생각도 전혀 없으며 자신을 진지하게 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듯 합니다. 반면 썸머의 입장에서 톰은 그저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행위만 하고 있는거죠. 내적으로 불안정한 썸머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자신의 관계에 대한 생각만 계속 관철시키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맘에 떠나게 되는겁니다.

  외국 영화의 리뷰를 할때마다 항상 연기에 대한 평가가 가장 조심스럽고 어렵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대사의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하는데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표정과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는건 연기에 대해 채 반절도 말 못하는거죠. 그렇지만 이야기하자면,

 조셉 고든 래빗은 아역배우 출신이지만 전 그의 어린시절을 지켜보지 못했으니 어떤 이미지로서 받아들여지진 않아요. 다만 최근에 큰 작품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500일의 썸머는 그의 시발점같은 작품이죠. 자연스러워요. 술먹는 장면이 많은 영화인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썩 괜찮은 연기라고 보여집니다. 감독이 실제로 술을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의 헐랭한 모습을 보고 인셉션에서 무게를 잡아서 좀 충격받은 사람도 있다더군요.

 주이 디샤넬에겐 본인의 가장 예쁜 시절을 기록할 영화일겁니다. 최근에 드라마 new girl에서 나오는 모습보다 이때가 천배쯤 예쁩니다. 주인공이 예쁜게 강조가 되야 하는 영화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연기는 그럭저럭.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스스로 좀 고민하는 느낌.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예쁘고 귀여운건 톰의 어린 동생 역할로 나온 클로이 모레츠입니다. 지금에야 많이 커서 탑 배우중 하나가 되었지만 이때만 해도 킥애스보다 전인걸요. 인생 다 산 표정으로(실제로 오빠보다 훨씬 현명합니다) 톰을 위로하면서 때론 나무라는 장면은 정말 귀엽습니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를 해석하는 방식과 현학적 접근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이건 감독과 작가의 재능이지요. 특히 시간 배열을 그녀와 만난지 몇일째, 라고 보여주는 방식이나 시점이 달라지는 방식들은 꽤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다만 썸머를 이겨내고 새 여자를 만나는 과정을 굳이 톰이 꿈을 이뤄내는 과정과 함께했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만 놓고서는 톰은 독립적 자세를 이룰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한계짓는 것 같아서. 젊은 감독이 (사실상) 첫 영화를 잘 찍긴 했습니다만, 장치도 좀 과하게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구요. 뮤지컬같은 시도가 재미없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좀 뻔한 장르적 클리쉐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오프닝이 아주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작가 본인의 소재가 영화의 75%라고 하던데, 이런 자막이 나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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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NOTE: The following is a work of fiction. Any resemblance to any persons living or dead is pu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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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ecially you Jenny Beck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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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ch.

(번역)

작가의 말 : 이어질 이야기는 모두 허구입니다. 혹시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죽었건, 살았건)이 있더라도 그저 우연에 불과합니다.


특히 너 제니 벡맨.


썅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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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 첫째는 타이밍이요, 둘째는 진심이로다. 쉬운듯 어려운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