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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27 범죄와의 전쟁 (2012, 윤종빈 / 최민식, 하정우) 1
posted by 박과장 2012. 4. 27. 03:56

 

 젊은 감독, 윤종빈은 한국 사회의 남자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 마초적인 권력 관계와, 가부장제, 멋있는 척은 졸라 하지만 알고보면 종잇장처럼 얇은 신념이라던가, 세상에 적당히 맞춰 살아가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자세 같은것들이요. 섹스에 환장하는 수컷들의 모습에 집착하는 홍상수랑은 조금 다른 지점이겠습니다.


 특히 첫 장편 연출작 '용서받지 못한 자'의 내무반 구성은 계급으로 나눠진 남자들이 원래 다 그렇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결국 이를 부조리하다 여기다가 물들게 되고 그런 자신이 얼마나 위험해졌는지 자각한 주인공은 목숨을 끊고 말지요.


 다음 작품인 '비스티 보이즈'는 호스트바가 무대입니다. '공사'가 난무하는 이 바닥에서 가장 비중있고 희화화된 인물은 하정우가 맡은 '재현'입니다. 여자들한테 돈뜯어내기 바쁜 이 사람은 그래도 BMW를 타고 다니면서 온갖 멋있는 폼은 다 잡고 다니지만, 결국 그냥 딱 고만한 속물에 불과합니다. 빚쟁이한테 쫒겨서 여자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고. 결국 조금이나마 순수함이 남아있던 윤계상은 피를 보고, 뻔뻔한 하정우는 살아남아서 일본까지 건너가 또 호스트바 일을 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윤종빈 감독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감독한다고 발표하고 시놉시스를 읽었을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마초권력이 가장 뿌리깊게 영향력을 발휘했던 시대이면서, 나라의 가장 큰 틀인 정치도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마초적으로 돌아갔지요. 그러니 마초들을 현실적이지만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윤종빈이 아마 가장 하고싶었던 장르일겁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비리 세관원이던 최민식은 비리가 걸려서 직장을 관둬야 하는 상황인데, 이 와중에 밀수하려던 많은 양의 히로뽕을 발견하고, 관두는 김에 이걸 유통시켜서 한몫 잡아보려고 합니다.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는 조폭 하정우의 손을 잡고 같이 일을 하게 되지요. 이 과정이 재미있는데, 처음에는 하정우의 주먹이 무서워서 빌빌 기던 최민식이 같은 종씨의 집안 사람이란걸 알고(그것도 한참 아랫 사람이지요) 갑자기 반말을 내뱉다가 한대 얻어맞죠. 그 다음 장면은 집에 들어온 하정우가 최민식 앞에서 공손히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는 모습입니다. 평생 일면식도 없던 사람에게 집안 어른이라고 갑자기 절을 해야 되는 세상, 위아래 나누기 좋아하는 딱 야만적인 그때 모습이지요.

 

 이후로 둘은 같이 일을 해나가면서 로비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최민식은 정치권에 온갖 줄을 대가면서 하정우와 함께 사업을 키워나갑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누구 눈에 잘보여야 되는지만 알면 일은 만사 형통입니다. 그냥 평범한 가장이었던 최민식은 하정우의 비호 아래에 반쯤 조폭이 되기도 하고.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헌데 이권을 다투는 남자들, 게다가 자존심이 센 하정우가 최민식에게 계속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있고 싶지도 않고. 결국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최민식은 하정우의 반대편에 서있던 다른 조폭과 손을 잡기도 하구요. 그리고 영화 제목이기도 한 '범죄와의 전쟁'이 결국 벌어젔을때 본인을 수사하러 온 검사와 손을 잡게 되면서 하정우를 팔아넘기고 마지막에 살아남는건 최민식이죠. 윤종빈의 모든 작품에서 순진한 사람은 얼마나 강한 척을 하고 열심히 살던 도태되거나 목숨을 잃습니다. 적당히 세상에 맞춰주는 주인공들이 성공하거나 잘 살아가요. 이건 살아남는게 강한 거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를 한층 더 강조하는 도구입니다.


 스토리 라인이 많이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캐릭터를 살리는데 주력한 시나리오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통제가 덜해요. 캐릭터들이 살아서 나돌아다니도록 감독이 부추기는 느낌이고, 특히 최민식은 극의 중심으로서 모든 인물과 탁구를 치듯이 주고받는 리듬을 갖게 되는데 역시 대단한 배우인만큼 일관되게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불안감을 주지 않는 연기가 좋은 연기지요. 하정우는 이름값에 비해서 좀 작은 역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건 '밀양'의 송강호랑 비슷한 겁니다. 내가 못해서가 아니고 주인공이 중요한 극이기 때문에 잘 받쳐주는데 중점이 가 있는 연기지요.

 

 조연들의 연기가 아주 좋은걸로 유명하지요. 요새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듣던 마동석같은 배우라던가 검증된 김응수같은 배우들도 물론 좋지만, 검사역의 곽도원과 창우 역의 김성균은 발견이라고 할 만큼 좋은 배우들입니다. 곽도원은 영화 '황해'에서도 짧은 등장이지만 인상깊었던 기억이 나네요.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회상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플롯 자체를 복잡하게 짜지 않음으로서 이해가 잘 되고,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들은 간단한 영화적 장치나 상징들을 통해 빠르게 넘어갑니다. 영화를 평소에 즐기던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쉽게 즐길 수 있고 영화를 즐기는 사람 나름대로 찾아볼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꾸준히 잘 되어 온게 한국 영화바닥이고 참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운대', '한반도'같은 영화들은 사실 한국영화를 말아먹고 있는 주범들이에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흥행 잘되서 돈 도는데 뭐가 문제냐, 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게 흥행이 잘되더라도 사실은 스케일이 아니라 이야기의 질로 승부해야 한국 영화는 승산이 있는데(할리웃이랑 스케일로 붙어서 이길 수 있습니까? 말도 안되는 개소리지요) 자꾸 돈을 써서 판을 키워야 흥행한다는 요상한 공식을 사람들 머릿속에 주입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겁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보면 이 와중에 고군분투 해 온 박찬욱, 봉준호, 최동훈에 이어 한국 상업영화가 또 하나의 좋은 감독을 얻어낸 것 같습니다.


 ost로 쓰였던 '풍문으로 들었소'는 오리지널인줄 알았는데 원래 함중아의 곡을 장기하가 리메이크 했더군요. 세대가 거기까지는 아니라서...


한줄평 : 간지나 보이고 싶었던 아재들의 눈물겨운 먹고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