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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9 은교 (2012, 정지우 / 박해일, 김고은, 김무열)
posted by 박과장 2012. 5. 9. 01:40

 

(상영작이라서 붙이는 안내 - 나름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대부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볼 예정이신 분은 스킵하시는 편이 재미질겁니다.)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다만 충족되면 그것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욕망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은 그것을 이룰 수 없을때입니다.

 '은교'는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박해일이 연기한 대시인 '적요'는 젊음, 그리고 이로 인해 얻을 수 있을 싱그러운 은교를 욕망하고 김무열이 연기한 젊은 작가 '지우'는 적요의 재능을 욕망하며 '은교'는 아버지를 욕망합니다. 친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라는 것의 존재를. 이건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의야하실 분도 있는데, 곧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하간 이 세가지 종류의 욕망 다 이루어 질 수 없지요.

 적요는 교과서에 시가 실린데다가 자기 이름의 문학관까지 지어질 대시인입니다. 국민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데다가 어느 자리에 나가도 사람들은 알아서 설설 깁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양반인데 아무래도 예술을 하다보니 좀 괴팍한 데가 있어요. 심하진 않지만.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제자가 젊은 작가 '지우'입니다만, 사실 이 사람은 작가로서의 재능이 전혀 없습니다. 좀 치사하달 정도로 영화는 그 점을 부각시킵니다. 은교의 거울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은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 아니 자칭 글 쓰는 사람이란 놈이 그런 감성을 이해 못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걸 이해 못한다고 말한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 드러나지요. 베스트셀러인 소설 '심장'을 히트시킨 상태인데, 알고보니 이것도 스승인 적요가 대필해준 거죠. 지우는 언제 진실이 드러날 지 몰라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에 더욱 더 열심히 적요를 모십니다.

 그러니까 지우를 움직이는 두가지 동력은 첫번째는 자신이 가짜 작가임이 드러날까 하는 불안감이고, 두번째는 혹시 적요의 곁에서 지내면 그 재능이 어느 정도 옮아오지 않을까 하는 욕망입니다. 불안감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가지는 대부분의 추악한 부분이 그렇듯이 지우는 이걸 포장하기 위해 적요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아버지같은 분, 사랑하는 선생님 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가 술을 먹고 이야기 할때마다 이게 꽤 많은 부분이 포장인게 드러나죠.

 재능에 대해서는...공대생이라서 한계가 있다는 강요를 영화는 내내 이야기 하지만 그건 사실 전공의 문제가 아닐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자기 재능에 맞게 문/이과가 꼭 나눠지진 않으니까요. 그보다는 애초에 문학 타입의 사람이 아닌거죠. 예술이란게 원래 그렇듯이 시간과 노력만으로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없기에 지우의 욕망은 더욱 이루어질 수 없는거겠죠. 그는 본인을 이적요 껍데기라고 표현할 만큼 적요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적요와 닮기 위해 무진 애를 쓰기도 합니다. 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대표하는 캐릭터지요. 안타깝게 지우의 가족관계에 대한 묘사가 없어서 직접적으로 추측할 수 없지만.

 한편 적요는 이런 와중에 여고생 은교를 만나게 됩니다. 일흔이 넘은 남자이지만 시인이라 감수성도 예민하고, 꾸준히 젊은 시절의 자신을 욕망하지만 이걸 억지로 부정하죠. 이걸 잘 나타내 주는 상징이 젊은날의 본인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입니다. 그 욕망을 부정하기 위해 책상위에 있던 사진을 엎어놓고 보질 않는데, 한창 은교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불타오르게 되면서 다시 세워놓게 되죠.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처럼. 

 욕망에 대한 가장 강렬한 표현은 무의식에서 나오는데(우리는 의식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꽤 많은 억압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습니다) 꿈은 그 무의식이 현실적 제약을 넘어 가장 크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가 얼마나 젊음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가 바로 꿈에서 나타나죠. 바로 은교가 헤나를 해주고 있을때 깜빡 잠에 드는 장면입니다. 은교를 쫒아 가기 전에, 그에 앞서서 적요가 더 신경 쓰고 감격한 부분은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입니다. 다시 젊어져 있는, 그 얼굴. 그러나 이 역시 이루어질 수 없기에 아주 아픈 욕망이죠. 젊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의 욕망의 다른 한편은 은교에 대한 욕망입니다. 이건 사실 젊음에 대한 갈구와 크게 다르진 않은데, 지우가 극의 후반부에서 대놓고 이야기 하듯 그의 은교에 대한 사랑은 더러운 스캔들로 세간에선 받아들여지기에 은교에 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가 젊음을 꿈꾸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은교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흔히 영화 '은교'가 받고 있는 오해가 이게 남성들의 판타지에 대한 영화라는 겁니다. 나이든 노인에게 어느날 갑자기 젊고 예쁜데다가 싹싹하고 얘기도 잘 들어주는 여자가 나온다니, 어떤 젊은 여자아이가 미쳤다고 그럴까. 이건 그냥 더러운 늙은 노인의 판타지가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은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근원은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변형입니다. 그걸 이야기 하면 이 남성 판타지가 부정될 수 밖에 없지요.

 영화 내내 은교가 유일하게 이야기하는 가족 구성원은 '엄마'입니다. 은교를 때린 것도 엄마. 은교가 슬퍼하는 것도 엄마. 왜 온갖 이야기를 다 하면서 아버지의 얘기는 없을까요. 전 영화를 보다 아마도 은교는 어떤 사정에 의해, 그것이 사별이든 이별이든, 아버지가 없을거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됐습니다. 즉 은교는 나이든 남성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극복이 유년기에 없었습니다.

 모든 여자 아이들은 어린 시절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겪는다고 합니다. 이건 아버지가 주는 애정에 있어서 아버지가 최초의 이성이기에 아버지의 애정을 어머니와 다투게 되는 건데, 이 다투는 과정 이후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당연하고 유일한 이성 관계임을 깨닫게 되면서 자연스레 아버지를 이성의 대상으로 놓지 않게 되고, 그 이후 다른 나이든 남성도 자연스레 '아버지'처럼 대할 수 있게 되는거죠.

 헌데 이 과정이 은교에겐 없었고, 그래서 아버지뻘, 혹은 그 이상 되는 남성과의 관계가 '왜 이성적 관계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무의식적 확립이 존재하지 아니했던 겁니다. 실제로 정신과에 '나이든 남성에게만 자꾸 끌리고 연애감정이 생긴다는 경우 이런식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없었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그러니 은교가 적요를 대할때의 기분은 아버지와의 관계와 연인과의 관계 그 두가지가 혼동되어 있었던 거죠. 적요를 놓고 지우와 갈등관계에 자꾸 휩싸이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정리하자면, 오히려 적요는 은교의 판타지에 부합하는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는 나이도 들었고, 아주 자상한데다가 경험도 많고 박식하고, 이루어놓은 것도 많죠. 엘렉트라 컴플렉스를 앓고있는 은교에게는 더 없이 끌리는 상대자로 보였을거에요.

 그리고 은교는 많은 사람들의 오해처럼 '뮤즈'가 아닙니다. 이건 영화 홍보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여하간 적요가 은교를 보고 좋은 작품을 탄생시킨 건 맞지만 그 전에도 '심장'으로 지우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걸 보면 이 사람은 그냥 타고난 천재입니다. 언제건 좋은 작품을 써낼 능력도 있구요. 적요가 작품을 써내기 위해 은교를 만난게 아니고 은교를 만나다보니 은교의 에너지가 그의 재능과 만나서 좋은 작품이 나온거죠.

 자, 그러면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 왜 은교는 적요의 이마에 키스하고 지우에게로 가서 섹스했느냐. 은교는 그때까지 그 소설을 지우가 쓴 줄 알아서, 본인을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해준것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어느 순간 극복되면서 여자 아이는 이제 다른 이성을 찾게 되는거죠. 적요의 존재는 그녀에게 아버지처럼 단단해졌고 이제 극복의 단계가 시작 된겁니다. 한번의 망설임이 나오는 걸 전 그 발전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이제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었고 새로운 이성에게 아내가 되어야 하는 거죠. 막상 적요와 섹스를 하자니 그는 늙은데다가, 알고보니 점점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오는거죠.

 헌데 조금 불쾌하게까지 느껴졌던 점은 이러한 상징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좀 더 은근한 맛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나요. 영화 내내 은교의 아름다움을 은근하게 표현했듯이. 조명담당이 엄청 고생했을 영화입니다. 빛을 통해 은교의 아름다움을 기가막히게 살려냈거든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박해일은 잘했는데, 그건 30대 배우 박해일이 연기를 잘한거구요. 왜 하필 그에게 분장을 시켜서 70대 노인연기를 시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날의 그의 모습이 나오는 그 몇 컷을 위해서? 젊음에 대한 갈구는 젊은 사람에게서 그렇게 쉽게 나오는게 아닙니다. 이건 감독의 무리수죠. 투자 유치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장하느라 고생했을 해일씨에게 박수.

 김고은은 신인답게 연기가 불안정한 장면이 좀 있었지만, 한예종 출신이라 기본기가 뛰어나다는 인상도 많이 받고, 딕션도 좋고. 역시 몇몇 장면에서 호흡과 발성이 좀 떠 있는게 걸리긴했지만 은교 캐릭터 자체가 튀는 느낌을 줘야 되서 크게 무리수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출 연기하느라 고생했어요. 몸이 예쁘던데.

 가장 안정되고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되는 배우가 김무열입니다. 단순한데 안그럴려고 노력하는 캐릭터가 연기하기 은근히 힘들거든요. 그 세밀한 허세를 스스로 참아내고 연기해야되니까.

정지우감독의 연출은 옛날에는 참 신선한 것이었는데 벌써 영화 해피엔드가 곧 15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노장감독을 보는 느낌이 났습니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구요. 소설을 읽은 분들은 오글거리는 장면이 소설에서 더 많았었다는데, 신선한 영화를 만들라면 '헐'에피소드 같은건 좀 빼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70대 노인과 10대 소녀는 굳이 그런 유치한 예 말고도 차이가 많거든요.

노출 논란같은게 별로 의미있어 보이는 영화는 아닙니다. 벗는다고 야한게 아니거든요.

 

한줄평 : 원래 사람은 꼭 못 얻을걸 얻고싶어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