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8. 5. 27. 17:3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하사탕은 이창동의 두번째 영화로, 바로 이전에 리뷰했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처럼 현대사를 겪어내는 개인의 이야기를 여러 시점에서 조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역순으로 장면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 장면은 1999년, 마지막 장면은 1979년으로 약 20년 정도의 시간 동안 60년생인 주인공 '영호'의 삶을 보여주며 왜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 초반 관객들은 영호의 행동들을 보면서 그가 내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파탄에 이르러서 결국 기차 앞에서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계속 궁금해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거대한 '왜'라는 질문에서 영화가 출발하는 것이죠. 왜 영호는 죽어야 하는가? 무엇이 그를 괴롭게 하여 어릴적 친구들 앞에서 저 난리를 치도록 만들었을까?



결국 영화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관객들은 영호는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한 소녀를 사살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소녀를 사살했다기 보다는, 그 이전의 섬세하며 사진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던 영호 본인의 자아를 파괴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영호는 전역 이후에 경찰이 되는데, 그와 애인관계이던 순임도, 그의 가족들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영호가 5.18을 전후로 얼마나 큰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고문의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의 대변이 손에 묻는 장면에서 그의 손이 더럽혀지는 장면의 상징성은 그 다음 장면에서 순임의 앞에서 홍자(김여진 분)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장면으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영화는 기차가 달리는 장면을 역재생해서 보여줍니다.(언뜻 보면 잘 모르지만, 화면 구석구석 내려야 할 꽃잎이 도로 올라가거나 하는 장면들이 펼쳐지지요) 왜 기차일까요? 기차는 정해진 역, 정해진 선로만 갈 수 있습니다. 현대사라는 거대한 바퀴가 굴러갈때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생존하기 위해 정해진 선로를 따라갈 수 밖에, 열차에 실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릅니다. 자동차라면 자신의 길을 찾아 개척해 나가겠지만요. 경찰 복무 중에 술에 취해 갑자기 군 시절의 트라우마가 폭발한 영호가 자전거를 타고 술집 안을 빙글빙글 도는 장면도 비슷한 의미를 상징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다만 기차와 자전거가 다른 점은, 기차가 정해진 곳만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는 그렇지 않지만, 결국 영호는 자전거를 타고도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맙니다. 이것은 현대사 속에서 폭력을 자행한 영호가 아무런 선택권도 없지는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폭력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의 고발로 읽힙니다. 결국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었다'는 면죄부의 부여가 아니라, '현대사라는 거대한 아픔이 있었지만, 그에게 선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이중적인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영호가 만나는 여인들은, 그 시절의 영호의 모습을 닮아 있는 또 다른 영호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한 여인과의 이별은 영호에게 이전의 영호로부터 작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순수하고 이타적인 순임과 군생활을 기점으로 달라진 영호는 홍자를 선택하고, 홍자와 똑같이 불륜을 저지르지만 홍자의 불륜과 사업실패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영호는 홍자와도 이혼하게 됩니다. 중간에 빠진 여인이 한 명 있는데요, 바로 경아(고서희 분)입니다. 군산에서 순임을 그리워하는 영호를 보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지요. 경아는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본인을 순임으로 여기고 해보라고 하고, 영호는 경아를 '순임씨'라고 부르며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둘은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경아는 선착장에서 영호를 기다리지만, 영호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경아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영호의 거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불행에 대해 스스로 사과할 수 있을뿐,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겁니다.



당시 몇몇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설경구를 장편 영화의 주인공으로 세운 건 주변에서도 많은 만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무한 신뢰가 있었다는군요. 최근 재개봉 기념 인터뷰에서도 설경구는 '영호'가 감당하기 힘든 역할이었다고 털어놓더라구요. 설경구의 연기는 춘사영화제 남우주연상등 당대의 쟁쟁한 상을 휩쓸며 인정받습니다. 사실상 설경구에게 거의 모든 비중이 맞추어져 있는 영화지만, 역시 무명에 가까웠던 문소리나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던 김여진 역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설경구의 호연을 돕습니다.






<버닝>의 종수, <밀양>의 신애, <박하사탕>의 영호 등 이창동의 영화는 구원받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그리고 어찌할 바 모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호는 기차에 뛰어들어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종수는 벤을 죽이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신애는 유괴범을 마음속으로 용서하면, 혹은 죽이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이창동 세계의 영화 철학이 우리에게 가장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박하사탕이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호에겐 잘못을 고칠 시점이, 과거의 영호로 돌아갈 수 있던 시점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덧말. 윤도현밴드의 곡 '박하사탕'은 이 영화의 OST가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 만들어졌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