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5. 5. 19. 14:00

 아주 답답합니다. <트라이브>를 보기 시작한 후 처음 10분 정도의 심리 상태입니다. 왜냐구요?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모든 의사소통이 수화로 이루어지는데,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자막 한 줄 없습니다. (더 정확히는, 영화 맨 처음 앞으로 자막이 없을 것이라는 자막은 나옵니다만.) 게다가 일반적인 잡음을 제외하곤 영화 음악도 없어요. 하지만 10분 여를 견뎌내면, 화면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얼개를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특별한 영화적 '체험'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에게 영화속 대사는 엄청난-혹은 엄청나다고 믿어온-것이었습니다. '드루와' 가 없는 <신세계>,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 아니, 이게 아니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대사가 없는 <부당거래>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영화의 주제의식을 한번에 정리해주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것이 대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사가 없이(정확히는 수화가 오고가지만, 그것도 우크라이나 수화이니 우리나라 관객들에겐 없다고 보는게 맞지요.) 관객들은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물론 약간의 해석 차이는 있지만, 그건 대사가 있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렇다면 영화에서 대사는 정말로 엄청난 것일까요? 아니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에서 소리나는 말이라는 것이 그렇데 대단한 것일까요?  <트라이브>는 단순한 영화적 경험을 넘어 이러한 성찰에 이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영화 스스로의 스토리를 배제하고라도 말이에요. 순전히 이러한 양식만으로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청각 장애가 있는 학생들만 다니는 기숙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학교는 사실 마피아 조직이나 다름없습니다. 학교 선생들부터 가장 어린 학생까지 앵벌이, 매춘, 강도, 절도 등 온갖 범죄를 조직적으로 운용하고 있어요. 이 조직에서 꽤 상층부에 편입되어 신임을 쌓아가던 주인공은 매춘부로도 일하는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고, 일을 방해하다 집단 내에서 말단 앵벌이의 위치로 추락합니다. 결국 사랑을 좌절당한 분노로 몇 명의 상층부를 모두 살해하고는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상당히 흔한 이야기입니다. 누아르 장르의 꽤 익숙한 이야기죠. 잘 나가던 조직원이 사랑때문에 조직에 배신 혹은 해를 끼치고, 제거되거나,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조직에 맞서서 싸우게 된다는 이야기는 한국 누아르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달콤한 인생>, <차이나타운> 같은 영화들요) 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트라이브> 가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점이라면 그 배경이 엄연한 '학교' 이고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것이 실제로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형식적 특징 말고도 사회고발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양식적 특징을 넘어 영화라는 장치로서의 특징을 몇가지 살펴보죠. 감독은 영화의 특성상 모든 배우가 비전문, 그것도 실제로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총 1년의 시간동안 SNS를 통해 캐스팅을 작업했다고 하네요. 사실 엄청난 성공이라고 봅니다. 어떤 전문 배우도 이런 연기는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등장하는 배우들 모두 하나의 감각이 좌절되어 있는 묘한 광기를 대단하게 표현합니다.


 편집과 카메라 움직임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원래 대사에 흐름에 맞춰 카메라가 움직이는게 일반적인 촬영의 기법이라면, 이들은 사실상 '온몸으로' 말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풀샷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 또한 원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관조적인 시선으로 느껴져서 사회비판적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켜 줍니다.




한줄평 : 우리가 지금까지 들었던 말소리들은 다 뭐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