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4. 8. 8. 00:33


 일전에 정성일 평론가 인터뷰에서 본 이야기인데, 정성일씨가 차이밍량 감독을 만나서 물었답니다. "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입니까?" 그러자 차이밍량 감독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네요. "영화 만드는 사람의 내일을 걱정하면 좋은 영화이고, 온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나쁜 영화입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이 이야기는 책임감에 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던지 내가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는 거지요. 전혀 알지 못하는 것,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이치에 맞게, 허술하지 않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와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 이런 일들이 이야기 만드는 일의 기본적인 책임이며 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지점에서, "명량"은, '3부작의 일부가 아니라 한편의 영화로서' 볼때는 절대 좋은 영화가 아닙니다. 명량은 많은 인물들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갑자기 스크린에 나타난 진구는 종횡무진 뛰어다니다가 이순신 장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아까워하지 않으며 그의 부인으로 나온 이정현도 왜 말을 못하게 되었는지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건지, 진구는 어떻게 만났는지, 왜 진구를 저렇게 사랑하는지 아무 것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물론 고작해야 두시간 남짓의 시간만 주어지는 상업영화에서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도 상황을 납득시키는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것이 영화 만드는 이의 기본 소양이자 의무이자 능력입니다. 이걸 못하면 제대로 된 이야기꾼이 아닌겁니다. 


 하다못해 주인공인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조차 변변치 못합니다. 이순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외국인이 이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시 조정과 이순신의 관계에 대해 아주 단편적인 모습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정치에 의해 이순신은 고초를 겪었는데 이야기에 정치라고는 1그램도 없습니다. 그냥 "왜군은 나쁜놈인데 조선의 조정은 방해가 되고 그러니까 조정 대신들도 나쁜놈들이고 이순신은 착하고 그래서 나쁜놈들이 안도와주지만 나쁜놈들을 무찌른다." 이 이야기에서 한발짝도 진전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얘기는 일곱살짜리도 하겠습니다.

 

 아니 그냥 이 영화는 주제의식과 전투씬에 변태처럼 몰두한 나머지 나머지 부분은 그냥 도구로 이용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형성하고 있지 못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왜군 소속이지만 사실은 첩자로 나오는 오타니 료헤이는 어째서 조선군의 편인지 힌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냥 나와서 왜군이다가 조선군이다가 왔다 갔다 하며 쌍검만 휘두릅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 안에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도구로 인물을 만들어 막 가져다 쓸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한민 감독을 마이클 베이와 비유하여 이야기하더군요. 초기작인 '더 록', '아일랜드' 등에서 괜찮은 블록버스터를 만들던 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손을 대며 미취학아동 수준의 영화만 찍어내게 된 것처럼,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훌륭한 상업영화 데뷔를 했던 김한민 감독이 '명량'이후 계속 그저그런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찍어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트랜스포머에는 최소한의 예절이란게 있습니다. 적어도 그 영화는 로봇에 대한 애정은 있어요. 확실한 세계관이 있고, 로봇들이 굳이 지구에서 변신까지 해가면서 싸워야할 이유를 줍니다. '명량'엔 그게 없습니다.


 영화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김한민의 전작 '최종병기 활'은 저에겐 분명히 표절 영화였고(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명량'은 올해 본 영화중에 최악의 영화중 하나였습니다. 이미 기대치가 별로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없어졌어요. 어떻게 '극락도 살인사건'을 만들었는지 의아할 지경입니다. 이런 연출과 표절 아래에선 최민식의 연기에 대해 논하는 것 조차 무의미합니다. 그는 언제나처럼 훌륭한 배우입니다만,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끌려다니는 모습이 좀 안타깝긴 했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서 바라는 것은 모두 다를겁니다. 열대야로 지쳤는데 스크린에서 시원한 바다를 보며 피서를 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왜군에 맞서서 인간이 아닌 반신(半神)의 모습으로 온갖 역경을 말도 안되게 이겨나가는 이순신을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겁니다. 다만 전 최소한의 영화라는 형식에 대한 예의와 미학적 완성도를 필요로 합니다. 천만관객이 되거나 말거나 상업적 부분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큰 관심은 없지만, 적어도 천만을 돌파했을때 제가 한 자리를 보태줬다는 사실이 꽤 고통스럽긴 할 거 같네요.



 엔간해야지 봐주죠. 3부작 다 내면서 얼마나 대단한 설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편의 영화를 돈내고 보러 온 관객들에게 이러면 안됩니다.


한줄평 : 이것은 좋은 영화가 아니다.


posted by 박과장 2014. 7. 25. 02:25

비가 밤새도록 올 모양이다.


 당신이 한국에 산다면, 비 하면 여름날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봄비, 가을비, 겨울비라는 말은 따로 있어도 여름비라는 말을 따로 쓰지 않듯이, 비 하면 여름이다.

 

 요새야 소나기가 낭만 없이 스콜처럼 내린다지만, 불과 오년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었다. 예고 없이 내리긴 했지만 이렇게 낭만 없이 퍼붓진 않았다. 적당히 퍼붓는 소나기를 뚫고 손잡고 뛰어가기 괜찮았었다. 아마도 여의도였던거 같다. 직장도 안다니면서 왜 여의도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추억에는 논리가 없다-내 팔목을 붙잡던 여린 손목이나, 뛰어서 빗물이 첨벙, 하고 튈때마다 내던 새된 소리, 같던 것들이 떠오른다. 


 오년쯤 되고 술 담배를 즐기다보니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해어졌는지가 잘 기억이 나질 않게 되었다. 이름을 기억은 하지만 이름을 들어도 별 느낌이 나질 않는다. 그때는 죽을 것 처럼 힘들었던게 분명한데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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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과장 2012. 5. 9. 01:40

 

(상영작이라서 붙이는 안내 - 나름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대부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볼 예정이신 분은 스킵하시는 편이 재미질겁니다.)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다만 충족되면 그것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욕망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은 그것을 이룰 수 없을때입니다.

 '은교'는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박해일이 연기한 대시인 '적요'는 젊음, 그리고 이로 인해 얻을 수 있을 싱그러운 은교를 욕망하고 김무열이 연기한 젊은 작가 '지우'는 적요의 재능을 욕망하며 '은교'는 아버지를 욕망합니다. 친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라는 것의 존재를. 이건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의야하실 분도 있는데, 곧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하간 이 세가지 종류의 욕망 다 이루어 질 수 없지요.

 적요는 교과서에 시가 실린데다가 자기 이름의 문학관까지 지어질 대시인입니다. 국민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데다가 어느 자리에 나가도 사람들은 알아서 설설 깁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양반인데 아무래도 예술을 하다보니 좀 괴팍한 데가 있어요. 심하진 않지만.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제자가 젊은 작가 '지우'입니다만, 사실 이 사람은 작가로서의 재능이 전혀 없습니다. 좀 치사하달 정도로 영화는 그 점을 부각시킵니다. 은교의 거울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은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 아니 자칭 글 쓰는 사람이란 놈이 그런 감성을 이해 못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걸 이해 못한다고 말한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 드러나지요. 베스트셀러인 소설 '심장'을 히트시킨 상태인데, 알고보니 이것도 스승인 적요가 대필해준 거죠. 지우는 언제 진실이 드러날 지 몰라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에 더욱 더 열심히 적요를 모십니다.

 그러니까 지우를 움직이는 두가지 동력은 첫번째는 자신이 가짜 작가임이 드러날까 하는 불안감이고, 두번째는 혹시 적요의 곁에서 지내면 그 재능이 어느 정도 옮아오지 않을까 하는 욕망입니다. 불안감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가지는 대부분의 추악한 부분이 그렇듯이 지우는 이걸 포장하기 위해 적요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아버지같은 분, 사랑하는 선생님 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가 술을 먹고 이야기 할때마다 이게 꽤 많은 부분이 포장인게 드러나죠.

 재능에 대해서는...공대생이라서 한계가 있다는 강요를 영화는 내내 이야기 하지만 그건 사실 전공의 문제가 아닐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자기 재능에 맞게 문/이과가 꼭 나눠지진 않으니까요. 그보다는 애초에 문학 타입의 사람이 아닌거죠. 예술이란게 원래 그렇듯이 시간과 노력만으로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없기에 지우의 욕망은 더욱 이루어질 수 없는거겠죠. 그는 본인을 이적요 껍데기라고 표현할 만큼 적요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적요와 닮기 위해 무진 애를 쓰기도 합니다. 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대표하는 캐릭터지요. 안타깝게 지우의 가족관계에 대한 묘사가 없어서 직접적으로 추측할 수 없지만.

 한편 적요는 이런 와중에 여고생 은교를 만나게 됩니다. 일흔이 넘은 남자이지만 시인이라 감수성도 예민하고, 꾸준히 젊은 시절의 자신을 욕망하지만 이걸 억지로 부정하죠. 이걸 잘 나타내 주는 상징이 젊은날의 본인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입니다. 그 욕망을 부정하기 위해 책상위에 있던 사진을 엎어놓고 보질 않는데, 한창 은교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불타오르게 되면서 다시 세워놓게 되죠.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처럼. 

 욕망에 대한 가장 강렬한 표현은 무의식에서 나오는데(우리는 의식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꽤 많은 억압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습니다) 꿈은 그 무의식이 현실적 제약을 넘어 가장 크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가 얼마나 젊음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가 바로 꿈에서 나타나죠. 바로 은교가 헤나를 해주고 있을때 깜빡 잠에 드는 장면입니다. 은교를 쫒아 가기 전에, 그에 앞서서 적요가 더 신경 쓰고 감격한 부분은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입니다. 다시 젊어져 있는, 그 얼굴. 그러나 이 역시 이루어질 수 없기에 아주 아픈 욕망이죠. 젊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의 욕망의 다른 한편은 은교에 대한 욕망입니다. 이건 사실 젊음에 대한 갈구와 크게 다르진 않은데, 지우가 극의 후반부에서 대놓고 이야기 하듯 그의 은교에 대한 사랑은 더러운 스캔들로 세간에선 받아들여지기에 은교에 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가 젊음을 꿈꾸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은교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흔히 영화 '은교'가 받고 있는 오해가 이게 남성들의 판타지에 대한 영화라는 겁니다. 나이든 노인에게 어느날 갑자기 젊고 예쁜데다가 싹싹하고 얘기도 잘 들어주는 여자가 나온다니, 어떤 젊은 여자아이가 미쳤다고 그럴까. 이건 그냥 더러운 늙은 노인의 판타지가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은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근원은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변형입니다. 그걸 이야기 하면 이 남성 판타지가 부정될 수 밖에 없지요.

 영화 내내 은교가 유일하게 이야기하는 가족 구성원은 '엄마'입니다. 은교를 때린 것도 엄마. 은교가 슬퍼하는 것도 엄마. 왜 온갖 이야기를 다 하면서 아버지의 얘기는 없을까요. 전 영화를 보다 아마도 은교는 어떤 사정에 의해, 그것이 사별이든 이별이든, 아버지가 없을거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됐습니다. 즉 은교는 나이든 남성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극복이 유년기에 없었습니다.

 모든 여자 아이들은 어린 시절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겪는다고 합니다. 이건 아버지가 주는 애정에 있어서 아버지가 최초의 이성이기에 아버지의 애정을 어머니와 다투게 되는 건데, 이 다투는 과정 이후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당연하고 유일한 이성 관계임을 깨닫게 되면서 자연스레 아버지를 이성의 대상으로 놓지 않게 되고, 그 이후 다른 나이든 남성도 자연스레 '아버지'처럼 대할 수 있게 되는거죠.

 헌데 이 과정이 은교에겐 없었고, 그래서 아버지뻘, 혹은 그 이상 되는 남성과의 관계가 '왜 이성적 관계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무의식적 확립이 존재하지 아니했던 겁니다. 실제로 정신과에 '나이든 남성에게만 자꾸 끌리고 연애감정이 생긴다는 경우 이런식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없었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그러니 은교가 적요를 대할때의 기분은 아버지와의 관계와 연인과의 관계 그 두가지가 혼동되어 있었던 거죠. 적요를 놓고 지우와 갈등관계에 자꾸 휩싸이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정리하자면, 오히려 적요는 은교의 판타지에 부합하는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는 나이도 들었고, 아주 자상한데다가 경험도 많고 박식하고, 이루어놓은 것도 많죠. 엘렉트라 컴플렉스를 앓고있는 은교에게는 더 없이 끌리는 상대자로 보였을거에요.

 그리고 은교는 많은 사람들의 오해처럼 '뮤즈'가 아닙니다. 이건 영화 홍보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여하간 적요가 은교를 보고 좋은 작품을 탄생시킨 건 맞지만 그 전에도 '심장'으로 지우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걸 보면 이 사람은 그냥 타고난 천재입니다. 언제건 좋은 작품을 써낼 능력도 있구요. 적요가 작품을 써내기 위해 은교를 만난게 아니고 은교를 만나다보니 은교의 에너지가 그의 재능과 만나서 좋은 작품이 나온거죠.

 자, 그러면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 왜 은교는 적요의 이마에 키스하고 지우에게로 가서 섹스했느냐. 은교는 그때까지 그 소설을 지우가 쓴 줄 알아서, 본인을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해준것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어느 순간 극복되면서 여자 아이는 이제 다른 이성을 찾게 되는거죠. 적요의 존재는 그녀에게 아버지처럼 단단해졌고 이제 극복의 단계가 시작 된겁니다. 한번의 망설임이 나오는 걸 전 그 발전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이제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었고 새로운 이성에게 아내가 되어야 하는 거죠. 막상 적요와 섹스를 하자니 그는 늙은데다가, 알고보니 점점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오는거죠.

 헌데 조금 불쾌하게까지 느껴졌던 점은 이러한 상징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좀 더 은근한 맛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나요. 영화 내내 은교의 아름다움을 은근하게 표현했듯이. 조명담당이 엄청 고생했을 영화입니다. 빛을 통해 은교의 아름다움을 기가막히게 살려냈거든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박해일은 잘했는데, 그건 30대 배우 박해일이 연기를 잘한거구요. 왜 하필 그에게 분장을 시켜서 70대 노인연기를 시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날의 그의 모습이 나오는 그 몇 컷을 위해서? 젊음에 대한 갈구는 젊은 사람에게서 그렇게 쉽게 나오는게 아닙니다. 이건 감독의 무리수죠. 투자 유치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장하느라 고생했을 해일씨에게 박수.

 김고은은 신인답게 연기가 불안정한 장면이 좀 있었지만, 한예종 출신이라 기본기가 뛰어나다는 인상도 많이 받고, 딕션도 좋고. 역시 몇몇 장면에서 호흡과 발성이 좀 떠 있는게 걸리긴했지만 은교 캐릭터 자체가 튀는 느낌을 줘야 되서 크게 무리수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출 연기하느라 고생했어요. 몸이 예쁘던데.

 가장 안정되고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되는 배우가 김무열입니다. 단순한데 안그럴려고 노력하는 캐릭터가 연기하기 은근히 힘들거든요. 그 세밀한 허세를 스스로 참아내고 연기해야되니까.

정지우감독의 연출은 옛날에는 참 신선한 것이었는데 벌써 영화 해피엔드가 곧 15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노장감독을 보는 느낌이 났습니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구요. 소설을 읽은 분들은 오글거리는 장면이 소설에서 더 많았었다는데, 신선한 영화를 만들라면 '헐'에피소드 같은건 좀 빼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70대 노인과 10대 소녀는 굳이 그런 유치한 예 말고도 차이가 많거든요.

노출 논란같은게 별로 의미있어 보이는 영화는 아닙니다. 벗는다고 야한게 아니거든요.

 

한줄평 : 원래 사람은 꼭 못 얻을걸 얻고싶어 하지요.

★★

 

 

 

 

 

posted by 박과장 2012. 5. 6. 02:09

 


 2000년대 이후 제작비가 100억원 이상 들어간 영화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괴물, 디 워 이상 다섯 편이라고 합니다. 백억이라는 돈이 감이 오십니까? 살면서 한번에 가장 많은 돈을 쓴게 기껏해야 비행기표 정도인 저는 잘 감이 안옵니다만. 어찌됐건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는건 꽤 많은 사람의 미래와 생각을 짊어지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큰 영화를 만드는 일을 감독들은 꼭 축복이라고마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의 초기작들 처럼 직접 투자하거나 아는 사람들정도 선에서 책임이 멈추고 리스크가 적으면 참 다행이지만 큰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게 되죠. 여러 사람의 밥줄이 걸린 문제가 됩니다.


 처음 '괴물'의 제작소식을 들었을때 들었던 느낌은 당황에 가까웠습니다. 이미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제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순위권에 들어있었고, '이야기'에 탐닉하고 디테일의 미치는 그의 특성 상 블록버스터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아무튼 제작소식을 들은 날 부터 영화 '괴물'에 관한 어떤 사전정보도 얻지 않게 노력했습니다. 미리 알고가면 김샐것 같아서.


 그리고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뛰어갔습니다. 너무 궁금해서지요. 세상에 봉준호가 괴물이 나오는 블록버스터를 찍는다니. 저 사람 디테일 좋아하는데 CG에 만족 못해서 결국 탈쓰고 한건 아닐까. 시작하자마자 괴물이 나오는데 송강호가 이단옆차기를 날리면서, '여기가 스케일의 왕국이냐'라고 일갈하진 않을까. 혹은 주인공들이 생각보다 엄청 쬐끄만 괴물을 키워주는 영화는 아닐까? 생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더군요. 괴물은 스케일 큰 영화이면서 이와 동시에 '안티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해서 100억을 넘게 쓴 영화가 안티블록버스터일수가 있을까. 정확히 얘기하면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장르적 관습에 이단옆차기를 날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런지 풀어보지요.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주한 미군 엉아들은 버리면 안되는 포름알데히드 같이 위험한 화학물질을 처리하기 귀찮아서 그냥 한강에 풀어버립니다. 여기에 노출된 탓인지 물고기 종류의 변종으로 보이는 '괴물'은 한강에서 요상한 형태로 무럭무럭 자라나게 됩니다. 키워드 첫번째. 왜 미군이 '괴물'현상의 원인일까요? 여러분이 알고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에서 미군은 어떤 모습입니까. 대체적으로 걔들은 정의의 편에 서 있고, 때론 주인공의 소속이기도 하고, 마지막에 사건을 잘 정리해주기도 하고 그런 애들인데, 미군이 오히려 악몽같은 현상의 원인이랍니다. 딴지 걸고 시작하지요.

  

 그리고 나타난 우리의 주인공 송강호는 톰크루즈나 브래드피트가 절대 아니죠. 외모도 평균 이하인데다가, 뭐 잘하는게 있기는 합니까. 돈을 잘 벌기를 합니까. 중학생인 딸내미한테 맨날 쿠사리나 먹는 마음만 착한 아버지입니다. 키워드 둘. 주인공은 선망의 대상이 아니어라. 그 조력자인 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바쳤으나' 현실은 백수인 박해일, '실력은 있으나 새가슴이라' 맨날 금메달 하나 못따는 양궁선수 배두나. 다들 프로페셔널 하다기에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들 빠진 인물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상대하는 괴물은 국민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딸이자 조카이자 손녀인 고아성이 납치된 상황 때문에 이 나사빠진 사람들이 괴물하고 싸워야 되는 거죠. 하지만 괴물을 때려잡는 과정을 통해 모두들 성장하는 모습이 또 재미있습니다. 박해일은 유일한 재주이던 도주와 화염병 투척을 통해 괴물을 때려잡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배두나는 인생에서 가장 떨릴 화살 한방을 성공시키면서 본인의 단점이였던 나약한 멘탈을 극복하지요. 게다가 송강호는 점점 철이 들구요.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반미영화다라는 소문이 돌았었습니다만, 그냥 이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가 얼마나 따져보면 웃긴지 엿맥이고 싶었던 걸로 보입니다. 특히 강하게 변명하는 듯한 장면이 있죠. 처음 나타난 괴물에게 송강호가 한방 먹이려고 무거운 돌을 들때, 같이 돌을 들어주는 사람은 암만 봐도 미군 병사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괴물에서 굳이 '비판'씩이나 하는 부분을 찾는다면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시스템으로 사람을 지배하려는 상황 자체겠지요. 이런 비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누명을 씌워서 송강호를 잡아 가둬놓았을때, 송강호가 탈출하려는 장면에서 제일 잘 드러납니다. "노 바이러스? 바이러스 없다는거네?" 이 대사 한마디에, 그간 여러가지 정보를 차단하므로서 개인들을 암암리에 억압해 왔던 시스템의 존재가 코믹하지만 살벌하게 드러나는 거죠. 


 처음부터 끝까지 봉준호 감독이 왜 봉테일인지 섬뜩하게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 가볍다고 시치미도 많이 떼지요. 언제들어도 대단한 변희봉의 명대사. "저쪽 테이블에서~ 오징어 다리가~" 하는, 그런 장면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고아성의 빈소 앞에서 가족들이 다같이 오열하는 장면입니다만.


 주인공이 많은 영화인데다가 배우들이 다들 베테랑이라 정확히 자신의 몫을 연기합니다. 봉준호는 작정하고 송강호의 송강호스러움을 끌어냈으니, 이건 그냥 송강호로서 훌륭한 연기이고, 의외로 재미있었던건 변희봉의 연기지요. 엄숙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 볼 수 없는 나이든 남자의 연기는 의외로 삶의 질곡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웃기는 대사를 해도 슬픈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 영화로 데뷔를 한 고아성의 연기도 재미있습니다. 역시 이런 역할은 경험이 없어야 됩니다. 봉준호감독은 통제가 좀 힘들더라도 신인연기자를 쓰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그랬고.

 위기가 오면 가족은 뭉치나 봅니다. 고아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배두나가 나중에 금메달을 땄는지 안땄는지 가지고 당시에 말이 많았었지만 사실 영화라는게 그게 중요한건 아니죠. 




덧붙임 하나. 괴물 목소리는 오달수가 녹음했다더군요. 흐하하...

덧붙임 둘. 속편 계획은 엎어졌나봅니다. 강풀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다그랬던 것 같은데.


한줄평 : 그런데 누구한테나 괴물을 있습니다.


★★★★

 

posted by 박과장 2012. 5. 3. 01:19

 

 감정의 유통기한은 어디까지인가요.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은 누구나 주목합니다. 아름답고, 빛나고, 설레는 그런 날들이니까요. 모든걸 집중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언제 우리는 사람을 잊고 언제 우리는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지나요.

 제목부터 봄날이 가버렸다니 좀 슬픕니다. 사실 우리는 봄날이라는 단어를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이야기할때 사용합니다. '왕년'같은 개념이죠. 글을 쓰는 오월 초에 날씨가 너무 더워서 봄날이 가버린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런 용법은 아닐거에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녹음실에 다니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지방을 다니면서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강릉에 있는 방송국 PD인 은수(이영애)와 함께. 같이 여행을 하게 되는 일이라서인지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한편 상우의 아버지는 일찍 상처했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진즉 작은마누라를 얻어서 나간 남편을 잊지 못해 매일 매일 기차역으로 옷을 정갈하게 챙겨입고 나갑니다.

 한창 아름다운 사랑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장가가라는 가족의 압박도 있고 해서 상우는 은수에게 아버지에게 인사를 가자고 이야기하는데,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이게 엄청나게 부담스럽습니다. 말을 돌리고, 말을 돌리다보니 마음이 상하고, 닫히게 되고, 한 달만 떨어져있자고 상우에게 이야기 하게 되죠. 그 와중에 자연스레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기도 하고, 결국 상우에게 이별을 통보하게 됩니다.

이후 상우는 좀 망가집니다. 술에 잔뜩 취해 찾아가기도 하고, 은수가 새로 뽑은 차를 긁어놓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죠. 다니던 녹음실을 때려치려고 하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안보게 된 두사람,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어느날 은수가 자신의 삶에 상우가 꽤 큰 의미였는지 알게 됬거든요.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녀 앞에 서 있는 상우는 사실 그 때의 상우가 아닙니다. 충분히 상처받았고 그녀에게 정이 떨어졌으니까. 다시 시작해보려고 하는 은수를 잘 떨쳐냅니다.

 "봄날은 간다"는 관계의 시작보다 그 끝에 초점이 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한거죠. 가장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은수와 상우가 극의 절정부에서 이별을 맞이하게 되니까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도 둘의 이별장면입니다.

- 헤어지자.

- 내가 잘할게.

- 헤어져.

-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상우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변하지만(마지막에 은수를 다시 잡진 않잖아요) 그의 세계 안에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매일 곱게 차려입고 기차역으로 나가는 상우의 할머니나 이른 나이에 상처했지만 재혼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를 보세요. 이건 상우가 환경적으로 학습한 것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닮아 조용한 그의 성품에도 잘 걸맞는 것이죠.

 그러나 은수의 세계는 그러지 않습니다. 은수는 일단 이성에게 다가가는데 큰 장벽이 없는 사람입니다. 상우를 처음만났을때 척하고 손을 내미는 모습이 그렇죠. 새로운 것에 매력을 잘 느낀다는 것은 좋아하던 것을 잘 바꾼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게다가 한번의 이혼을 통해 남녀 관게에 대한 냉소적인 생각도 묻어납니다. 사실 결혼이라는 과정까지 가는데에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을텐데 그게 무너졌으니 냉소적일 수 밖에요.

 허진호 감독은 이 둘의 감정선을 아주 내밀하게 그려냄으로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멋대로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을 사랑 삼부작이라고 묶어서 부르곤 하는데, 이 세 편 모두 현실적인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장벽과 뜨거운 사랑이 부딪힐 때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봄날은 간다는 극적인 장치를 가장 배제함으로서 너무나 현실적이라 가슴 아픈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 이야기를 해볼까요. 원래 이영애는 현실적인 영화랑 잘 안맞는 배우중에 하나입니다. 너무 예쁜 비주얼이 그렇고, 사람들이 잘 못느끼지만 발성이 굉장히 특이한 배우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주변에 목소리가 이영애같은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그 목소리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는 참 좋은데 이렇게  현실적이 영화에 어울리는가 하는 걱정은 좀 됩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허진호 감독은 굉장히 짧은 대사길이를 주었고, 이 작전은 잘 먹혀들어갔습니다. 영화 내내 이영애가 길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별로 없어요. 게다가 외모가 주는 느낌이 은수와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구요.

 제가 유지태라는 배우가 참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기 시작한게 바로 봄날은 간다입니다. 아직 소년같은 얼굴이 있던 그때의 유지태에게 이 배역은 몸에 잘 맞는 옷입니다. 느릿하지만 처절한 연기. 사랑이 분노로 뒤바뀌어 버린 상황을 어쩔줄 몰라하며 노래책을 들여다보며 '미워도 다시 한번'을 불러제끼는 장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의 얼굴들 중 하나입니다.

 조연들은 크게 비중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상우 아버지역할의 김인환씨는 아내 없이 아들을 키워온 가장이자 엄마역할을 하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을 슬프지만 굳건하게 보여줍니다. 인상적인 연기에요.

 

언젠가 봄날은 오고, 때로는 가기도 합니다만, 마지막 재회의 장면에서 두 사람이 걷는 길이 벚꽃이 만개한 눈부신 장면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이러니이자 아름다움일겁니다. 어떤 이별은 가장 아름다울때 오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전 사랑을 믿고 한번 더 슬픔을 각오하려 합니다만.

 

한줄평 : 때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일이 사랑의 종말이 되곤 합니다.

 

 

 

 

posted by 박과장 2012. 5. 1. 00:11

  

 <건축학개론>의 리뷰를 통해 이미 이 블로그에서는 성숙하지 못하지만 착한 남자가 어떻게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상처받았다고 믿게 되는지 이야기 했었습니다. 넵. 남자가 나쁜겁니다.

 오늘 이야기 할 영화는 건축학 개론의 이제훈보다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역이지만 사실 하는 짓은 크게 다르지 않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500일의 썸머. 여자주인공의 이름이 '썸머'인지라 500일의 그 여자의 기억 혹은 500일의 여름날 요렇게 중의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군요.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는 일을 기억하는건 계절에 대한 기억처럼 선명하지만 왜곡된 이미지를 같게 되니까요.

 우리의 주인공 톰(조셉 고든 레빗)은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본 스타일입니다. 적당한 자기애와 자기비하가 있으면서 팝 컬쳐보다는 좀 된 노래를 좋아하고, 겉치레보다는 실속있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사실 화려한 것에 대한 동경도 좀 있구요. 여자 좋아하고. 주변 친구들은 좀 더 심각한 케이스죠. 마지막 연애가 초등학교때라거나. (근데 옷은 못입는 듯 너무 잘입어서 좀 언밸런스 하긴 합니다. 이런 형들 TPO에 맞게 옷입는거 본적 없는데..)

  헌데 이 남자, 귀여운 구석이 있는게 아직도 진짜 사랑을 믿는답니다. 사실 요새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사랑의 기준은 쿨함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데 얼마나 시대착오적 생각입니까. 게다가 백마왕자에 대한 환상 비슷한 것이 있어서 언젠가 본인에게 꼭 맞는 사람이 자기 손을 잡아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 '썸머'는 자신이 예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예쁜 여자입니다. 이런 경우 자의식이 잘못된 방향으로 커지는데, 말하자면 스스로를 많이 사랑하게 되는데 그 대부분의 이유가 외모에 있는거죠. 그러다보니 공허한 내면을 채우기 위해 맘에 들지도 않는 책을 읽는다거나 음악을 좋아한다고 우기는 '교양 속물'이 됩니다. 영어로는 힙스터라고 하던데.

 톰은 직장동료인 썸머를 만나서 호감을 느끼죠. 이쁜 여자니까. 게다가 썸머는 자신이 듣는 스미스를 좋아한답니다. 세상에 스미스를 좋아하는 젊고 예쁜 여자라니. 그전까지는 그림의 떡보듯 썸머를 보았었지만 이제 톰은 썸머가 운명이 아닐까 고민합니다. 저 여자가 내 전부/운명이 되어주진 않을까. 그리고 의외로 이건 짝사랑은 아닙니다. 썸머도 톰에게 호감을 느꼈거든요. 사실 그녀가 이성을 좀 쉽게 만나는 성격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둘은 잘 되고 연인같은 관계가 됩니다. 왜 연인 '같은' 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썸머는 사랑같은 건 믿지 않거든요. lover라는 호칭을 쓰질 못하는 거죠, 본인이. 점점 더 진지해지는 톰과 관계안에 갇힐까봐 두려워하는 썸머. 결국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되고 톰은 반폐인이 되어 직장마저 관두게 되지요. 여기서 질문, 썸머가 나쁜 년이어서 톰을 버린걸까요? 아니면 톰이 멍청해서 그런걸까요?

 여하간 이후 둘은 다시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초대받아서 같이 다시 커플처럼 신나게 놀고 오지만 톰의 바람/예상과는 달리 썸머는 그냥 그를 흘러간 친구 하나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장도 관두고 인생의 끝에 몰린 것 같은 그지만 다시 전공했던 건축에 열의를 불태우며 결국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거기서 같이 면접을 본 다른 지원자 아가씨랑 잘될 것 같은 암시와 함께.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관계의 몇몇 진실은 이미 영화 '행복'의 리뷰를 통해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두루미와 여우의 이솝 우화를 생각하시면 되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접시에 담아 내놓으면 두루미는 먹기가 힘들지요. 관계라는 것이 그런 면이 있습니다. 톰의 입장에서 보면 썸머는 너무 차가운데다가 미래에 대한 생각도 전혀 없으며 자신을 진지하게 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듯 합니다. 반면 썸머의 입장에서 톰은 그저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행위만 하고 있는거죠. 내적으로 불안정한 썸머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자신의 관계에 대한 생각만 계속 관철시키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맘에 떠나게 되는겁니다.

  외국 영화의 리뷰를 할때마다 항상 연기에 대한 평가가 가장 조심스럽고 어렵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대사의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하는데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표정과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는건 연기에 대해 채 반절도 말 못하는거죠. 그렇지만 이야기하자면,

 조셉 고든 래빗은 아역배우 출신이지만 전 그의 어린시절을 지켜보지 못했으니 어떤 이미지로서 받아들여지진 않아요. 다만 최근에 큰 작품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500일의 썸머는 그의 시발점같은 작품이죠. 자연스러워요. 술먹는 장면이 많은 영화인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썩 괜찮은 연기라고 보여집니다. 감독이 실제로 술을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의 헐랭한 모습을 보고 인셉션에서 무게를 잡아서 좀 충격받은 사람도 있다더군요.

 주이 디샤넬에겐 본인의 가장 예쁜 시절을 기록할 영화일겁니다. 최근에 드라마 new girl에서 나오는 모습보다 이때가 천배쯤 예쁩니다. 주인공이 예쁜게 강조가 되야 하는 영화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연기는 그럭저럭.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스스로 좀 고민하는 느낌.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예쁘고 귀여운건 톰의 어린 동생 역할로 나온 클로이 모레츠입니다. 지금에야 많이 커서 탑 배우중 하나가 되었지만 이때만 해도 킥애스보다 전인걸요. 인생 다 산 표정으로(실제로 오빠보다 훨씬 현명합니다) 톰을 위로하면서 때론 나무라는 장면은 정말 귀엽습니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를 해석하는 방식과 현학적 접근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이건 감독과 작가의 재능이지요. 특히 시간 배열을 그녀와 만난지 몇일째, 라고 보여주는 방식이나 시점이 달라지는 방식들은 꽤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다만 썸머를 이겨내고 새 여자를 만나는 과정을 굳이 톰이 꿈을 이뤄내는 과정과 함께했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만 놓고서는 톰은 독립적 자세를 이룰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한계짓는 것 같아서. 젊은 감독이 (사실상) 첫 영화를 잘 찍긴 했습니다만, 장치도 좀 과하게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구요. 뮤지컬같은 시도가 재미없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좀 뻔한 장르적 클리쉐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오프닝이 아주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작가 본인의 소재가 영화의 75%라고 하던데, 이런 자막이 나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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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NOTE: The following is a work of fiction. Any resemblance to any persons living or dead is pu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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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ecially you Jenny Beck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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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ch.

(번역)

작가의 말 : 이어질 이야기는 모두 허구입니다. 혹시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죽었건, 살았건)이 있더라도 그저 우연에 불과합니다.


특히 너 제니 벡맨.


썅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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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 첫째는 타이밍이요, 둘째는 진심이로다. 쉬운듯 어려운 사랑.

★★

posted by 박과장 2012. 4. 27. 03:56

 

 젊은 감독, 윤종빈은 한국 사회의 남자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 마초적인 권력 관계와, 가부장제, 멋있는 척은 졸라 하지만 알고보면 종잇장처럼 얇은 신념이라던가, 세상에 적당히 맞춰 살아가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자세 같은것들이요. 섹스에 환장하는 수컷들의 모습에 집착하는 홍상수랑은 조금 다른 지점이겠습니다.


 특히 첫 장편 연출작 '용서받지 못한 자'의 내무반 구성은 계급으로 나눠진 남자들이 원래 다 그렇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결국 이를 부조리하다 여기다가 물들게 되고 그런 자신이 얼마나 위험해졌는지 자각한 주인공은 목숨을 끊고 말지요.


 다음 작품인 '비스티 보이즈'는 호스트바가 무대입니다. '공사'가 난무하는 이 바닥에서 가장 비중있고 희화화된 인물은 하정우가 맡은 '재현'입니다. 여자들한테 돈뜯어내기 바쁜 이 사람은 그래도 BMW를 타고 다니면서 온갖 멋있는 폼은 다 잡고 다니지만, 결국 그냥 딱 고만한 속물에 불과합니다. 빚쟁이한테 쫒겨서 여자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고. 결국 조금이나마 순수함이 남아있던 윤계상은 피를 보고, 뻔뻔한 하정우는 살아남아서 일본까지 건너가 또 호스트바 일을 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윤종빈 감독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감독한다고 발표하고 시놉시스를 읽었을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마초권력이 가장 뿌리깊게 영향력을 발휘했던 시대이면서, 나라의 가장 큰 틀인 정치도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마초적으로 돌아갔지요. 그러니 마초들을 현실적이지만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윤종빈이 아마 가장 하고싶었던 장르일겁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비리 세관원이던 최민식은 비리가 걸려서 직장을 관둬야 하는 상황인데, 이 와중에 밀수하려던 많은 양의 히로뽕을 발견하고, 관두는 김에 이걸 유통시켜서 한몫 잡아보려고 합니다.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는 조폭 하정우의 손을 잡고 같이 일을 하게 되지요. 이 과정이 재미있는데, 처음에는 하정우의 주먹이 무서워서 빌빌 기던 최민식이 같은 종씨의 집안 사람이란걸 알고(그것도 한참 아랫 사람이지요) 갑자기 반말을 내뱉다가 한대 얻어맞죠. 그 다음 장면은 집에 들어온 하정우가 최민식 앞에서 공손히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는 모습입니다. 평생 일면식도 없던 사람에게 집안 어른이라고 갑자기 절을 해야 되는 세상, 위아래 나누기 좋아하는 딱 야만적인 그때 모습이지요.

 

 이후로 둘은 같이 일을 해나가면서 로비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최민식은 정치권에 온갖 줄을 대가면서 하정우와 함께 사업을 키워나갑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누구 눈에 잘보여야 되는지만 알면 일은 만사 형통입니다. 그냥 평범한 가장이었던 최민식은 하정우의 비호 아래에 반쯤 조폭이 되기도 하고.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헌데 이권을 다투는 남자들, 게다가 자존심이 센 하정우가 최민식에게 계속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있고 싶지도 않고. 결국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최민식은 하정우의 반대편에 서있던 다른 조폭과 손을 잡기도 하구요. 그리고 영화 제목이기도 한 '범죄와의 전쟁'이 결국 벌어젔을때 본인을 수사하러 온 검사와 손을 잡게 되면서 하정우를 팔아넘기고 마지막에 살아남는건 최민식이죠. 윤종빈의 모든 작품에서 순진한 사람은 얼마나 강한 척을 하고 열심히 살던 도태되거나 목숨을 잃습니다. 적당히 세상에 맞춰주는 주인공들이 성공하거나 잘 살아가요. 이건 살아남는게 강한 거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를 한층 더 강조하는 도구입니다.


 스토리 라인이 많이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캐릭터를 살리는데 주력한 시나리오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통제가 덜해요. 캐릭터들이 살아서 나돌아다니도록 감독이 부추기는 느낌이고, 특히 최민식은 극의 중심으로서 모든 인물과 탁구를 치듯이 주고받는 리듬을 갖게 되는데 역시 대단한 배우인만큼 일관되게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불안감을 주지 않는 연기가 좋은 연기지요. 하정우는 이름값에 비해서 좀 작은 역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건 '밀양'의 송강호랑 비슷한 겁니다. 내가 못해서가 아니고 주인공이 중요한 극이기 때문에 잘 받쳐주는데 중점이 가 있는 연기지요.

 

 조연들의 연기가 아주 좋은걸로 유명하지요. 요새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듣던 마동석같은 배우라던가 검증된 김응수같은 배우들도 물론 좋지만, 검사역의 곽도원과 창우 역의 김성균은 발견이라고 할 만큼 좋은 배우들입니다. 곽도원은 영화 '황해'에서도 짧은 등장이지만 인상깊었던 기억이 나네요.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회상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플롯 자체를 복잡하게 짜지 않음으로서 이해가 잘 되고,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들은 간단한 영화적 장치나 상징들을 통해 빠르게 넘어갑니다. 영화를 평소에 즐기던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쉽게 즐길 수 있고 영화를 즐기는 사람 나름대로 찾아볼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꾸준히 잘 되어 온게 한국 영화바닥이고 참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운대', '한반도'같은 영화들은 사실 한국영화를 말아먹고 있는 주범들이에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흥행 잘되서 돈 도는데 뭐가 문제냐, 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게 흥행이 잘되더라도 사실은 스케일이 아니라 이야기의 질로 승부해야 한국 영화는 승산이 있는데(할리웃이랑 스케일로 붙어서 이길 수 있습니까? 말도 안되는 개소리지요) 자꾸 돈을 써서 판을 키워야 흥행한다는 요상한 공식을 사람들 머릿속에 주입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겁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보면 이 와중에 고군분투 해 온 박찬욱, 봉준호, 최동훈에 이어 한국 상업영화가 또 하나의 좋은 감독을 얻어낸 것 같습니다.


 ost로 쓰였던 '풍문으로 들었소'는 오리지널인줄 알았는데 원래 함중아의 곡을 장기하가 리메이크 했더군요. 세대가 거기까지는 아니라서...


한줄평 : 간지나 보이고 싶었던 아재들의 눈물겨운 먹고살기. 


★★★★






posted by 박과장 2012. 4. 25. 22:24

 

야구팬들은 대개 자신이 야구를 보기 시작한 시점부터 10년까지를 최고의 황금기로 본다.

 - 레너드 코페트(야구 기자,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60년간 야구기자로 활동)

 

  사람들은 새로운 장르, 종목, 형식을 접했을때, 그때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과 첫사랑 비슷한 감정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야구로 말할 것 같으면 저에겐 삼성라이온즈, 양준혁, 그리고 이승엽. 그리고 힙합을 말하자면, 에미넴, 다이나믹 듀오.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러분에게 힙합은 무엇입니까. 10대 시절의 저에게는 힙합은 음악 그 자체였으며,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하는 음악 장르이고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동안 들어온 음악입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힙합 뮤지션이 에미넴이었습니다. 에미넴 때문에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었습니다. 

 

 

 에미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모든 랩퍼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러하듯, 그의 인생을 관통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모든 가사를 스스로 써내야 하는 랩퍼들에게 음악은 그들의 삶을 반영하므로 인생 그 자체이고, 인생에 대한 제대로 된 관찰 없이 랩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요. 빵빵 터지는 파티튠만 힙합이 아니고, 생각보다 힙합의 많은 부분은 철학이에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고, 아버지가 일찍 가정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키워왔는데 (에미넴의 주장이 맞다면) 남편이 떠나고 남겨진 상황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에미넴의 인생을 다룬 영화 '8마일'에 잘 드러나기도 했지만 디트로이트 슬럼가가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곳이라 더 했을겁니다.

 그리고 집이 가난해서 장난감을 못사주다 보니 펜과 종이를 가지고 놀다가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었고, 동네가 가난해서 흑인 아이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힙합을 접해서 랩 가사를 쓰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 이리 저리 랩 대회도 나가면서 신통찮다가 97년에 랩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면서(랩 올림픽이라니 참으로 거창합니다만 어쨌든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대회였다고 합니다) 잘나가던 프로듀서 닥터드레의 눈에 띄게 되지요. 그리고 나온 앨범, The Slim Shady.

('the slim shady LP'의 타이틀곡 My Name is)

대단히 사랑받습니다. 사실 지금은 힙합이 빌보드 차트 전체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막 치고 올라오려는 중이었지요. 헌데 이 음악, 어찌되었건 흑인이 주류가 될 수 밖에 없는 음악인데 미국 사람들의 마지막 심리적 방어선 - 그래도 흑인 문화가 메인이 되기는 이르지 않냐? - 을 무너뜨리는 흑인보다 더 흑인음악을 잘하는 백인이 등장한거죠. 시대적, 문화적 상황과 들어맞는 등장시기의 운도 따랐고, 무엇보다 랩을 말도 안되게 잘하면서 거침없이 사회적 발언을 내뱉는 그에게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그 증거, 그래미상 랩 부문을 얻어냈지요.


 이 패기 돋는 젊은 랩퍼의 등장에 사람들, 다음 행보를 기다리면서도 소포모어 징크스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신인이 두번째 작품을 말아 잡수는 현상)을 우려합니다. 헌데, 그 다음 앨범이 아직까지도 힙합 역사상 가장 성공한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The Marshall Mathers LP'입니다.

(The Marshall Mathers LP의 타이틀 'Stan', 단편 소설 한권을 읽는듯한 드라마틱한 구성, 이 와중에도 맞아떨어져가는 라임들, Dido의 아련한 목소리, 적절한 샘플링, 스토리텔링 힙합의 교과서)

'stan'을 통한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이거니와 적절한 스킷 배치를 통해 얻어낸 흐름, 이로서 관통되는 앨범의 주제 의식, 버릴 것 없는 트랙, 간간히 끼어있는 유명인들에 대한 풍자, 직접적인 비판 등등. 본인의 실명을 앨범 제목으로 얹어낸 에미넴은 이미 모든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에미넴 그 자체입니다. 어딘가 꼬여있는 본인의 인격을 그대로 반영해낸다고 볼 수 있겠는데, 힙합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매력이 한층 강렬합니다. 특히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두고두고 설전을 벌이게 되는 대목까지. 가사가 상스러워서 이 블로그의 속성이랑 맞지 않아 자세히 언급할수 없지마는....

 이제 에미넴은 Big name, 거물이 되었고 그 다음 앨범을 내기 전까지 엄청난 부담감을 가졌다고 하지만 'Eminem show' 앨범을 통해 꾸준히 대박행진을 해나가지요. 당시의 음반 판매량 어마어마합니다. 타이틀 곡은 멜로디만 들어도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도 거의 다 알 노래, without me 였지요. 왜 당시 김기수씨가 개그콘서트에서 댄서 컨셉으로 나왔을때 다리를 쭉쭉 찢으면서 안무를 하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던....

그리고 본인의 인생을 담은 영화 '8마일'이 나옵니다. 이 블로그에서 영화에 대해 다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역할을 맡아서 본인이 아니고서는 세상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 이후 그는 슬럼프에 빠집니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기도 하고... 한동안 활동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 딸 헤일리가 음악하는 아빠가 보고싶다고 하는 한마디에 그는 막이 내린 뒤에 박수에 화답해 다시 무대에 선 듯 앨범 'Encore'로 돌아옵니다.

(Encore의 타이틀, 'Just Lose it'. 걍 집어쳐, 나 쉬다 나와도 이정도야, 라고 선언하는 듯한 곡)


Encore 이후로는 정말 몇년동안 활동이 없었습니다. 몇몇 단체곡의 참여 정도? 이 와중에 할리웃 파파라치들은 엄청 살이 찐 그의 모습을 찍어나르고, 대중들은 이제 그가 음악적으로 끝난게 아니냐, 추측하기도 하고. 팬들의 긴 기다림 끝에, 2009년 드디어 닥터드레와 함께한 싱글 'Crack a bottle'에서 죽지 않은 위용을 과시하며 컴백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해 5월 드디어 정규앨범 Relapse와 함께 돌아오지요. Relapse, 병이 재발하다. 그다운 앨범명의 선택입니다.

(Relapse의 타이틀 Beautiful)

이제 그는 단순히 독하다기보다는 본인의 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인기인의 공허한 삶에 대해서 예전처럼 무지막지한 풍자가 아니라 덤덤한 어조로 엮어나가지만 마음속에 타고있는 불은 더욱 뜨겁습니다. Relapse 앨범에 대해서는 당시에 좋으냐 나쁘냐로 논쟁이 좀 붙었었는데, 전 사실 제일 좋아하는 앨범입니다. 좀 구려지고 단순해진 부분이 있는데 이게 오래 쉬다가 나온 형의 분노랑 딱 섞여서 제가 좋아하는 색이 보이거든요. 생각보다 좀 안팔리긴 했어요. 그나마 we made you 정도가 선전했고.


 그리고 1년만인 2010년 다음 앨범이 나왔습니다. Recovery. 회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앨범입니다. 다들 Love the way you lie 들어 보셨을거 아닙니까. 굳이 설명할 필요를 못느낍니다. 몇년 놀다가 딱 앨범 두장째에 다시 빌보드를 씹어먹는 위엄.

 

 이 와중에 첨언하자면, 에미넴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때문에 여성과 관계를 잘 설정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사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부실한 경우 여자를 성녀/창녀 둘중 하나로 대하게 되지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을 상상해보시면 됩니다. 사실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좀 많다보니 에미넴이 그저 그런 힙합식의 조크를 사용한다고 느낄지는 모르겠는데 그의 여성 비하는 그 과정이나 대상이 굉장히 구체적이지요.(전처였던 Kim과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페미니스트들과 동성애자들이 제일 혐오하는 음악인이기도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예민하신 분들은 그의 음반중 극소수의 곡만 골라 듣거나 아에 접하지 않는 걸 권합니다.


 뭐 어찌되었건 에미넴은 저에게 되게 말잘하고 싸움도 잘하는데 알고보니 사연많고 여린 동네 형의 이미지입니다. 그 와중에 겁나 문학적이고 딸도 잘챙기고...


 야구 명언으로 시작했으니 같은 방식으로 끝내보도록 하지요.그가 뮤지션으로서 한물 갔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휴식 끝에 싱글이 나왔을때 이제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들도 있고. 거기에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실책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도 야구 경기를 완벽히 지배할 수 없다. 단지 도전할 뿐이다. 

- 루 브록(1964~197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 명예의 전당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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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 박지윤 (1982-)  (2) 2012.04.22
posted by 박과장 2012. 4. 24. 04:05


 

 저는 현역 한국 감독중에 이창동을 제일 좋아합니다. 어디 가서 이렇게 터놓고 말한적이 없는데, 다른 감독들 섭섭할까봐, 이참에 밝혀 둡니다.


 그래서 이 리뷰가 쓰기 제일 어렵습니다. 이창동의 영화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니까 제가 한국영화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접근할 수 있는 방법도 무궁무진하고 이야기거리도 너무 많은 영화입니다. 최대한 느끼는 그대로 써볼까 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여자 신애(전도연)는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으로 갑니다. 별 대단한 이유는 없어요. 아직 남편을 잊지 못했을까요. 그냥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던거겠죠. 가던 길에 차가 고장나서 카센터에 구조 요청을 하는데 그때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가 와서 차를 견인해 갑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신애는 종찬에게 이렇게 묻지요, 밀양은 어떤 곳인가요. 종찬은 대답합니다. 글쎄요. 한나라당 도시고, 부산 가깝고 말씨도 부산 말씨고....이어지는 신애의 질문, 밀양이 한자로 무슨 뜻인지 아세요? 종찬 말합니다. 우리가 어데 뜻보고 삽니까. 신애가 답해줍니다. 비밀 밀, 볕 양, 비밀의 햇볕, 밀양. 멋있지 않아요? 아무튼 종찬은 신애가 첫눈에 맘에 듭니다. 서른 아홉먹은 노총각이기도 하고.


 영화의 초반부는 서울살던 신애가 밀양에 적응하는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동네 만만찮게 보수적입니다. 옷가게 아줌마한테 가게가 칙칙하다고 벽 색좀 바꾸라고 했다가 쿠사리를 먹기도 하고. 동네 약사 아줌마는 맨날 교회 다니라 그러고. 그런 동네입니다. 피아노를 전공한 신애는 학원을 열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좀 있어보이는 척도 하고 그렇게 적응해갑니다.



 신애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 준입니다. 그런데 준이 유괴당하고 결국에는 살해당합니다. 신애의 삶은 절망과 분노로 가득찹니다. 이 때 신애를 붙잡는 곳이 교회입니다. 아들의 상실로 너무나 괴로워하던 그녀는 교회 생활을 통해 너무나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용서하겠노라며 자신의 아들을 유괴했던 범인을 교도소로 면회를 가는데. 신애가 용서한다고 말하기도 전에, 범인은 감옥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 모든 것을 회개하고 용서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애에게, 자매님께서도 이제 평온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신애, 면회장소를 나오자마자 기절합니다. 내가 용서하기 전에, 어떻게 저 사람이 용서받을 수 있는건지. 

 

 이후 신애는 온몸으로 신을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위해 예배를 하고 있는 곳 유리창에 돌을 던지기도 하구요, 교회 장로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하려고도 하고, 괜히 지나가다가 하늘을 보며 "난 너한테 안져, 절대 안져"라고 말하거나, 밖에서 교회 행사를 하고있는 곳에서 재생되고 있던 찬송가 대신에 김추자가 부른 '거짓말이야'를 틀어서 여러 사람을 황당하게 하기도 하지요.


 결국 밤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더니 집에서 혼자 과일을 깎아먹다가 손목을 그어 자해를 합니다. 천장을 보며 내뱉는 신애의 한마디, 봐? 보여? 하지만 정말 죽음이 찾아올듯 출혈이 계속 되자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맙니다. 살려주세요.

 

 이후 병원에서 퇴원하고서는 신애 삶에 어느 정도 변화의 물결이 보입니다. 옷가게 아줌마는 인테리어를 바꿨더니 정말로 매상이 올랐다고 하고, 신애 스스로도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자르며 앞으로 정돈된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저 멀리 마당 한쪽 더러운 구석을 비추는데, 그냥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 쬡니다. 


 이게 밀양의 이야깁니다. 중간중간 생략된 부분이 있지만, 큰 줄기는 이래요. 어떻게 보면 작은 이야기입니다. 그냥 아이를 잃은 한 엄마의 이야기 일수도 있고. 다만 우리 모두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계속 걸리게 되는건 신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단히 크게 오해받고 있습니다. 먼저, 영화에서 신애가 겪는 딜레마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봅시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하고 구원을 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기독교가 인간의 불완전성에 기인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너무 약하고 속된 존재여서 다른 이의 죄를 사할 수 없는데다가 아담과 이브의 원죄 이후 본질적으로 죄인입니다. 이는 예수가 매춘부의 이야기를 할때 잘 드러나지요.("너희들 중 죄없는 자만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이렇듯 어차피 인간이 인간에게 죄 있음과 죄 없음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한 행위이기에 모든 이의 죄를 사한 예수가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독교인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것이 크게 의미있는 행동은 아닐 지 몰라도 남을 용서하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철저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범인을 용서하러 간 신애의 행동 자체가 크게 의미있지 않아요. 죄를 사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까. 

 

 교도소를 방문한 이후 신애가 괴로워 하는 것은 이러한 종교의 질서와의 대립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단순히 기독교 영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종교가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를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 영화는 용서가 그렇게 쉽냐? 너같으면 용서하겠냐? 에서 끝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웅변학원장이 신애의 아들을 죽인건 신의 잘못입니까? 혹은 범인이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일은요? '밀양'에서 이야기 하는 신의 의지는 숨쉬는 공기, 내려쬐는 햇빛과 같습니다. 특정한 방향으로의 흐름이 아니라 무릇 그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겁니다.


 

 하늘을 보며 '너!'라고 외치면서 절대 질 수 없다는 신애. 원작 소설(이청준, 벌레 이야기)은 유괴 후 살해까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같지만, 신이 먼저 용서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여자주인공은 약을 먹고 자살을 합니다. 사실 신애에게 죽음은 굉장히 쉬운 결말로 보입니다. 미래가 캄캄하고 유일한 희망마저 빼앗긴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가 몇개나 된답니까. 다만 이 이야기는 신애를 쉽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죽음으로서 하나님, 신, 절대자의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신애가 다시 살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서 다시 그 질서안에 들어왔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려쬐는 따스한 햇빛은 그 절대자의 마음이 그저 모두를 한결같이 바라본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밀양의 영어 제목이 secret sunshine인 것 또한 그 내려쬐는 햇빛이 신의 보살핌임을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기독교적이라고 잘못 받아들이지만 아주 기독교적인 영화입니다. 이러한 고통들이 다 신에 의한 장난이라면서 싸우려드는 신애지만 신은 그 분노마저 그저 따스하게 바라보고 있고, 신애는 결국 다시 신의 질서 안으로 돌아오지요.


 배우 전도연 인생에서 아마 최고의 영화일 겁니다. TV드라마 퀸에서, '접속','약속'을 통해 충무로 흥행 퀸이 된 그녀입니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했는데, 연기 욕심이 상당히 있는 배우여서 그런지 재미있는 행보를 걸어왔습니다. 특히 '피도 눈물도 없이'는 기존의 전도연을 완전히 뒤엎는 시도였죠. 성공여부는 확답하기 쉽지 않지만. 그리고 '너는 내 운명'의 매춘부 역할을 통해서 그동안 전도연의 연기에 항상 물음표를 달고 있는 평론가들에게 느낌표를 선사하면서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아마도 이창동 감독이 밀양에서 그녀를 선택한 것도 너는 내운명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상의 원톱 주연입니다.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준 영화제도 있지만 전도연의 영화지요. 연기할 거리가 무궁무진하게 많고,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다가 감정이 안나오는 날은 과감히 촬영을 접는 등 전도연을 끌어내는데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였는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전도연이 얻게 됩니다만.

 

 하지만 낭중지추라, 송강호의 연기는 말도 안되게 영화 속 그 인물 김종찬 본인입니다. 적당한 속물성이 있지만 한 여자에게만 헌신하는 노총각의 얼굴을 완전히 뒤집어 씁니다. 사실 젊은 감독과 작업을 할때 송강호는 어떤 역할을 맡던 본인 색깔이 많이 묻어나는 배우인데(이게 장점일 때도 있고 단점일 때도 있지요.) 이 영화에서만큼은 감독과 시나리오에 철저히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여지껏 송강호가 처음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영화라는데 준비를 얼마나 지독하게 헀는지 그냥 본인 말씨같구요. 특히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혼자 노래를 부르는 씬은 무릎을 치며 이야, 그래 한국 영화에는 송강호가 있었어! 라며 감탄하게 됩니다.


 장면별로 상징성을 따지다 보면 리뷰를 수십장을 써도 모자랄 작지만 거대한 이야기라서 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너무 아프게 좋아하는 영화라서. 자꾸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 리뷰만 쓰다간 곧 밑천 떨어질텐데. 그래도 그냥 쓰려구요. 좋은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면 누군가 보고 같이 좋아해주지 않겠습니까.


한줄평 : 어떤 사랑은 소리 나지 않고 눈부시지 않지만 그저 우리에게 항상 머무르고 있습니다.


★★★★★











posted by 박과장 2012. 4. 23. 03:39

한국영화


밀양 (2007, 이창동 / 전도연 , 송강호)

봄날은 간다 (2001, 허진호 / 유지태, 이영애)

범죄와의 전쟁 (2012, 윤종빈 / 최민식, 하정우)

파주 (2009, 박찬옥 / 이선균, 서우)

비트 (1997, 김성수 / 정우성, 고소영)


외국영화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2009, 쿠엔틴 타란티노 / 브래드 피트, 멜라니 로랑)

디스트릭트9 (2009, 닐 블롬캠프 / 샬토 코플리)

고백 (2010, 나카시마 테츠야 / 마츠 다카코, 오카다 마사키)


딱히 순서는 없습니다. 빨리 보고 싶으신 글이나 추천하고 싶으신 작품 있으시면 리플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