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2. 4. 21. 02:40

 

 

 


 타란티노는 새롭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새롭다는 것의 기준에 대해 다시 고찰해 봐야 합니다. 타란티노는 전에 없던 스타일의 감독인 것은 분명한데, 재밌는 것은 그 전에 없던 스타일이란 것이 기존에 있던 스타일을 이리 저리 섞어 낸 결과물이라는 거죠.
 
 사실 영화라는 산업이 어느 정도 영광을 얻어 내기 전에는 타란티노식의 작법은 출연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본이 없는데 오마주랑 패러디가 가능할 리가 없죠. 불멸의 텍스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비트는 일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타란티노가 이런 식에 작법에 집중하게 된 건 그가 영화 덕후 출신이기 때문일거에요. 이 냥반,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영화가 좋아서 혼자 영화를 찍어대는 것도 모자라서 비디오 가게 종업원으로 취직해서 진종일 영화를 봤답니다. 역시 예술에는 제도권 교육은 오히려 한계만 주는 일일까요?

 여하간 장편 데뷔작인 92년작 '저수지의 개들'부터 그 다음 작품 94년작 '펄프픽션'까지 타란티노는 이런 비틀기에 주력해 왔습니다. 시간적 진행을 무시한 편집, 끊임없이 떠벌거리는 캐릭터, 알듯 모를듯 스쳐가는 오마주와 상징들....

헌데 그 다음 작품인 97년작 '재키 브라운'에서는 떠벌거리는 몇몇 흔적만 남겨놓은 채 갑자기 시침 뚝 떼고 꽤 점잖은 방식을 택합니다. 게다가 원작 소설도 있는 작품이고.

 그리고 나서 나온 작품이 오늘 이야기 할 2003년작 '킬빌'입니다. 사실 03년에 킬빌 vol1, 04년에 킬빌 vol2가 나왔으니까 2003-2004년 작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무튼, 97년도 이후로 그가 작정하고 본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기까지 6년이 지난거에요. 이 영화 덕후가 그간 얼마나 이 작업을 학수고대해왔으며 무엇을 준비했을지 감이 오시죠? 그리고 만들어진 킬빌은 거의 오마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패러디 영화인 '무서운 영화' 수준이에요.

 제목이 킬 빌이죠. 빌을 죽이는게 영화의 대전제입니다. 여자 주인공(우마 써먼)은 빌을 죽이려 하는데 그 이유는 빌이 본인을 죽이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뱃속에 있던 딸은 정말로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니 이들은 킬러조직의 일원들이었고, 빌은 그 조직의 수장이자 우마 써먼의 애인이었는데 우마 써먼은 다른 남자랑 눈이 맞아서 결혼식을 올리려다가 참변을 당한겁니다. 그리고 이 참변에 동조하거나 방조한 조직의 일원들을 처단해 나가는게 킬빌 vol1 의 내용, 중요 조직원을 처리하며 결국 빌을 만나게 되는게 vol2의 내용입니다.

 조직의 보스를 처단하기 위해 하나하나씩 부하 조직원을 죽여간다는 내용 자체를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죠. 우마 써먼이 싸울때 항상 입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줄이 들어간 트레이닝복 자체가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고, 중요인물과 싸우게 될때마다 우마써먼의 눈이 클로즈업 되면서 사이렌 소리 비슷한 효과음이 터지는 것(이 효과음은 지금은 없어진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에서 빵 터지는 장면 직전에 액션!하는 외침과 함께 사용되기도 했었죠)은 정청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손가락'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뜬금없이 사용하기도 하고, 핫토리 한조가 검의 장인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패러디, 오마주의 폭탄입니다.

 헌데 무분별한 오마주와 패러디가 적절하지 못한 형태로 사용되면 영화가 엉망이 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2년작 장규성 감독의 '재밌는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처음으로 한국에서도 패러디 영화를 제대로 찍어보겠다더니 결과물은 썩 좋지 못했었습니다. 패러디를 위해 이야기를 이리저리 꼬아내다 보니 정작 중요한 얼개는 전혀 갖추지 못한거죠. 헌데 타란티노는 내가 이바닥의 왕이다라고 선언하듯이 이 정신없는 오마주 세계를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의 우주로 엮어냅니다. 인물들이 과장되어 있지만 우리는 충분히 설득당해요. 서로 칼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어린 딸이 들어오자 무기를 뒤로 숨기면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여자주인공과 은퇴한 여자 조직원의 모습은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에만 우리가 설득 당하는건 아닙니다.

 사실 내용의 개연성을 물을때, 몇몇 감독들은 역정을 내면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만 영화로 찍으라는 거냐"라면서 성질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굉장히 게으른 핑계입니다. 실제로 일어날 일과 우리가 설득될 수 있는 일은 같은게 아닌데 말이죠.

 타란티노 감독의 배우들은 사실 손해를 좀 봅니다. 다들 그런건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캐릭터는 캐릭터 그 자체로 극 중에 존재해요. 다면적으로 인물의 깊이를 그리기보단 이야기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죠. 스티브 부세미쯤 되는 배우가 아니면 그 캐릭터 파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vol1 중에는 여자주인공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the bride라고 크레딧에도 나와있습니다만, 2편에서야 이름이 밝혀지는 우마 써먼은 사실 이 캐릭터에 좀 매몰된 감이 있습니다. 주인공 자체가 사람 목 따는 일을 포도알 따는 일정도로 생각해서... 섬세한 캐릭터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았을겁니다.

 다른 배우들은 비중 상 크게 언급할 정도가 아니어서... 빌 역할을 한 데이비드 캐러딘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무리할 필요도 없는 역할이어서.... 그러고 보니 이 배우는 2009년에 세상을 떠났군요. 명복을 빕니다.


 타란티노의 세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른 영화 리뷰에서도 말할 기회가 많을겁니다. 다만 킬빌의 세계가 아직까지는 가장 타란티노 세계의 단면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줄평 : 쌈마이도 유일하면 스타일이 됩니다.


Vol 1: ★★★☆

Vol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