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2. 4. 19. 02:52

 

  좋은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요? 이 질문은 사실 좋은 삶은 어떤 삶이냐, 와 동급일만큼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생각을 많은 영화를  통해 바라보게 되지요. 뭐가 좋은 건지 일방적으로 고르는건 인터넷 특유의 '취존'정신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글쓰는 이의 양심에 찔리기도 합니다. 사실 리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작품에 애정이 있어야 되죠(혹은 분노거나..)그래서 이 영화 리뷰들은, 어디까지나 일방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영화, 내지는 제 주변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에요.


  이번에 다룰 영화는 2010년작, 만추 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원작 영화가 있고, 그 이외에도 먼저 리메이크한 다른 작품들이 있습니다. 많은 비교대상을 가지고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감독, 몇 배는 더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 투자를 받아가면서 이 이야기를 또 다시 은막 위로 불러내는 일은, 이야기에 그만한 매력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죄를 지어 감옥에 있는 여자가, 우연한 기회에 하루를 감옥 밖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때 만났던 남자와 단 하루지만 잊지 못할 사랑에 빠지는 겁니다. 인생의 빛나는 단 한 순간. 그 순간의 사랑을 기억하며 기약한 장소에 여자는 다시 나오지만, 모종의 사연이 있는 남자는 그 자리에 나오지 못합니다. 여자는 쓸쓸한듯 허탈하지만 역시 이 또한 인생의 한 부분임을 알았기 때문인지, 가볍게 웃습니다.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고 저는 말하고 싶네요. 기본적으로 단 하루의 자유라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만약 삶의 모든 의무를 저버린 채 하루의 자유를 준다면 어떤 일을 할건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고백하거나, 못먹어보았던 음식을 먹거나,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게 될겁니다. 말하자면 이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소의 루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줍니다. 그런데 그 벗어난 삶의 부분중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건 뭘까요? 역시 사랑이겠지요. 이렇듯 특별하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힘있는 이야기에요.


 같은 이야기를 다루었던 지난 작품들과는 다르게, 2010년작 만추가 다루는 특별한 지점은 다른 언어, 입니다. 주인공 둘은 영어로 소통할 수 있지만, 이는 둘의 모국어가 아닙니다. 각자의 모국어로는 소통할 수 없지요. 이 상황은 여자주인공인 탕웨이가 시장 한켠에서 본인의 사연에 대해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남자주인공인 현빈이 좋아요, 나쁘군요 이 두가지 대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그 장면에서 현저히 드러납니다. 둘은 다른 언어만큼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다른 언어 덕분에 하지 못할뻔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설익은 말보다는 눈빛에 집중하게 되지요.


 이야기에 대해 더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각자 이야기를 접하시고 느낄 몫이라고 봅니다. 이제 감독과 배우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지요.



 2010년의 만추를 만든 감독 '김태용'은 이미 한국 영화계를 두 번 들었다 놓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은 99년작 여고괴담2, 그 다음은 2006년작 '가족의 탄생'을 통해서였지요. 여고괴담2는 흥행 영화의 속편을 아주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촬영했다면, 가족의 탄생은 익숙한 작법으로 독특한 영화를 찍었습니다. 여고괴담2는 퀴어무비인데다가 - 대놓고는 아닐지 몰라도 - 공포영화의 속성을 빌려서 그 나이 또래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가족의 탄생은 시대적 흐름이 바꿔놓은 가족 형태에 대한 영화라고 단순하게 이야기 할수도 있지만 가족내 권력 이동에 대한 아주 핵심적인 보고서라고 볼 수도 있을겁니다. (개인적으로 고두심이 엄태웅과 연인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겁니다.) 두 영화의 그나마 공통점은 페미니즘을 알게 모르게 이야기하는 정도일겁니다. 그가 만추를 만든 것은 예상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놀라운 일도 아니에요.

 

 현빈의 연기는, 아주 내밀하게 우리가 알고있던 현빈과 다르지는 않지만, 그는 충분히 '훈'같습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배우의 재능보다는 캐스팅한 사람의 능력이 중요한 영역이기도 하지만요. 특히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중년의 여인과 마주할때 연기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탕웨이는 최고의 캐스팅이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너무 아름답다는 점만 빼면 애나 역할에 100% 적합하다고 봐요. 조금 덜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라고 봅니다만, 어찌됐던 탁월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왜 이 사람 포크를 썼어요?" 하며 울부짖는 씬은, 아, 환장하게 좋아요.


 잘만든 영화입니다. 영화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저이지만, 김태용 감독은 이게 소품이지만 대작이다, 라는 점을 잘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망치지 않아서 영화팬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줄평 : 간절할수록 더 원한다. 팔다리 묶인 사랑의 처연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