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2. 4. 19. 03:25

   


 완성되지 못한 사랑은 잘못을 전제로 하게 됩니다. 잘못한 사람이 없다면, 혹은 그 잘못을 참아줄만한 용기가 있다면 우린 지금 다 학부모일겁니다. 건축학개론은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첫사랑은 어디에서 잘못되었던 걸까.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


영화의 시작, 첫사랑이었던 서연은 15년전의 남자 승민을 찾아옵니다. 이건 과거에 둘이 했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약속의 내용이기도 하죠. 건축을 전공하는 승민에게 서연은 집짓기를 맡길거라고 했거든요. 여기에 둘의 과거가 오버랩됩니다. 



놀랍게도 서연-한가인은 과거에 수지였고, 승민-엄태웅은 과거에 이제훈이었죠. (이제훈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겁니까..) 이게 중요한건 아니지만. 여하간 과거에 그들은 아주 순수했으며, 서로가 첫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통해 둘의 사이는 틀어지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이게 다에요. 우리에게 분명 있었던 일입니다.


 다만 이 영화는 감독이 말했듯이 남자들에겐 반성문입니다. 현재시점, 엄태웅의 연인인 고준희는 엄태웅이 본인의 첫사랑을 '썅년'으로 묘사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썅년이라고 불렀던 사실 자체를 반성이 필요하다는게 아니고, 왜 서연을 썅년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냐는거죠. 서연이 썅년이여야만 본인의 행동이 이해가 되니까. 사실 승민의 행동은 진상을 알게 되었을때 본인이 입게 될 상처를 회피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첫사랑을 떠나고 떠나보내고, 썅년으로 만드는거죠 머릿속에서. 그리고 이 사실들을 앞에다가 늘어놓았을때,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은 서연을 썅년으로 생각합니까? 그건 아니죠. 그렇기에 이 이야기가 반성문이 되는 거죠. 남자 아이들은 스무살에 얼마나 설익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설익은 행동을 하게 되는지. 


 원래 남자아이들이 전두엽의 발달이 늦어서 상황 판단이나 대처가 여자아이들에 비해 많이 늦는다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면, 백프로지요. 제대로 행동할 리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리뷰에다 주장할런지 모르겠지만 연애는 좀 많이 해봐야 됩니다. 제대로 된 연애라는건 많은 경험에서 나와요. 좀 이야기가 새긴 했지만 본론으로 돌아가서. 첫 씬에서 서연을 반기지 않고 오히려 모른척하는 승민의 모습도 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겁니다. 사실 엄태웅은 전작 '시라노 연애 조작단'에서도 비슷한 과거가 있는 인물로 나오죠. 본인이 잘못했지만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굳게 믿어야 하는, 그런식으로 죄책감을 덜어내는. 감독들은 엄태웅의 얼굴에서 나이를 먹어도 철들지 않는 유년기의 남자의 습성을 찾아낸듯 합니다. 


 이야기는, 플롯은 좀 나뉘어 있지만, 사실 단순한 두개의 흐름이지요. 만남->헤어짐->다시 만남->다시 헤어짐의 구조에요. 하지만 관객들은 왜 건축학개론을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 이야기 할까요? 세상에, 모르셨구나. 원래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고 헤어지거든요. 이건 복잡하게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세세하게 이야기 해야 합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복잡할 수가 없습니다. 복잡해서도 안되구요. 그 본질이 만남과 헤어짐에 있고 모든 감정들이 거기에 종속되거든요. 건축학개론이 사랑받는 지점이 있다면 그 세세함일겁니다.

 

 배우들 이야기를 해볼게요. 사실 저는 드림하이를 보면서 정말 예쁜 수지가 연기는 안했으면 했습니다. 드라마 연기의 한계라던가 감독 지도의 문제가 있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보면서 하, 저건 아니지 싶은 순간이 한 둘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건축학개론에선 주연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 영화를 볼지 많이 망설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연기할 거리가 많은 역할이 아니어서,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는 편이 훨씬 중요한 역할이어서 오히려 그 예쁜 외모덕을 많이 봤어요. 원래 추억은 좀 미화되야 제맛이거든요. 이래서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 예쁜 배우가 중요합니다. 

 

 이제훈의 연기는 칭찬해야겠지요. 좀 뻔하고 클리셰가 많은 캐릭터라는게 못해도 티가 안난다는 장점 동시에 잘해봐야 티도 안난다는 단점이 있는 것인데 이제훈은 잘하는 티가 날 정도였어요. 원래 눈이 좋은 배우라는건 전작 '파수꾼'에서 알고 있었지만, '고지전'에서는 너무 눈에 의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본격적으로 발성도 쓰고 합니다. 배우로서 어려운 지점일텐데 잘 잡아냈어요.


 엄태웅은 그냥 우리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엄태웅입니다. 막 소리 지르면서 '엄포스'소리 안들어도 이제 어떻게 해야 잘하는 배우인지 아는 것 같아요. 예능에서 그렇게 순한 캐릭터가 연기 저렇게 해내는 것도 재밌죠. 이제훈하고 본질적으로 같지만(같은 사람이지만) 세상에 의해 변한 느낌을 잘 보여줘요. 책이 좋아서기도 하겠지만.

 

 사실 한가인 연기에 대해서 코멘트들이 분분한데, 저는 잘했다에 한표 던집니다. 원래 외모가 특출난 배우들이 똑같은 연기를 해도 더 손해보는 지점이 있어요. 세상에, 인형같으니까. 인형에 현실성이 없고, 영화 연기의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가 리얼리티인데 좋아보이기 힘들죠. 아 물론 저도 한가인이 욕할때는 좀 오그라들었습니다.


 주연 네명 외에 언급해야 할 배우가 있다면 '납뜩이' 역할의 조정석입니다.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스타급이었죠. 깎아 내리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캐릭터성이 강한 연기라 더 잘하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작품에선 좋았지만 아직 속단할 배우는 아닌 듯 하네요. 최근 촬영하고 있는 드라마 '더킹 투 하츠'에서 연기가 꽤 괜찮은 것 같으니 주목해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용주 감독은 '봉테일'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드는데에 반대했다고 하던데, 음... 영화는 어찌되었던 잘 되었습니다. 사실 이용주감독의 데뷔작 '불신지옥'은 현장에서 '책'을 그렇게 잘 썼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입니다(영화계에서는 시나리오를 주로 책이라고 부릅디다). 연출은 그에 좀 못미친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역시 직접 쓰고 찍은 건축학개론은 좋은 평을 듣고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영화내에 추억팔이라고 불리우는 행위들이 좀 적습니다. 7080 코드를 그려낸 '써니', '말죽거리 잔혹사', '품행 제로'같은 영화들을 보면 추억을 재현하는데에 아이템적 접근이 굉장히 중요하지요. 왜냐하면 영화가 나온 시점과 영화가 그리는 시점 사이에 갭이 좀 크거든요. 아이템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니까 아이템에 대한 세부 묘사보단 그냥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 만으로도 관객에게 회상 또는 생경함을 주기에 충분하거든요. 하지만 건축학개론이 그리는 15년전은 아직은 그렇게 먼 과거는 아닙니다. 피씨통신을 그냥 제시하는 것 만으로는 큰 회상거리가 못되요. 지금도 메신저 혹은 스마트폰으로 다들 채팅은 하는 걸요. 그러니까 그때의 분위기를 잘 이야기하는게 더 중요하죠.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 <기억의 습작>이 그런 예구요.


 완성되지 못한 사랑이 실패한 사랑은 아닐겁니다. 서연과 승민은 서로의 기억때문에 앞으로 그 전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거구요. 우리 삶에 그렇게 서투르지만 몰두했던 순간조차 없다면 어느날 좀 슬프지 않겠어요.


한줄평 : 돌아가지 않아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이름 첫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