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2. 4. 25. 22:24

 

야구팬들은 대개 자신이 야구를 보기 시작한 시점부터 10년까지를 최고의 황금기로 본다.

 - 레너드 코페트(야구 기자,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60년간 야구기자로 활동)

 

  사람들은 새로운 장르, 종목, 형식을 접했을때, 그때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과 첫사랑 비슷한 감정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야구로 말할 것 같으면 저에겐 삼성라이온즈, 양준혁, 그리고 이승엽. 그리고 힙합을 말하자면, 에미넴, 다이나믹 듀오.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러분에게 힙합은 무엇입니까. 10대 시절의 저에게는 힙합은 음악 그 자체였으며,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하는 음악 장르이고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동안 들어온 음악입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힙합 뮤지션이 에미넴이었습니다. 에미넴 때문에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었습니다. 

 

 

 에미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모든 랩퍼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러하듯, 그의 인생을 관통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모든 가사를 스스로 써내야 하는 랩퍼들에게 음악은 그들의 삶을 반영하므로 인생 그 자체이고, 인생에 대한 제대로 된 관찰 없이 랩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요. 빵빵 터지는 파티튠만 힙합이 아니고, 생각보다 힙합의 많은 부분은 철학이에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고, 아버지가 일찍 가정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키워왔는데 (에미넴의 주장이 맞다면) 남편이 떠나고 남겨진 상황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에미넴의 인생을 다룬 영화 '8마일'에 잘 드러나기도 했지만 디트로이트 슬럼가가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곳이라 더 했을겁니다.

 그리고 집이 가난해서 장난감을 못사주다 보니 펜과 종이를 가지고 놀다가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었고, 동네가 가난해서 흑인 아이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힙합을 접해서 랩 가사를 쓰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 이리 저리 랩 대회도 나가면서 신통찮다가 97년에 랩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면서(랩 올림픽이라니 참으로 거창합니다만 어쨌든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대회였다고 합니다) 잘나가던 프로듀서 닥터드레의 눈에 띄게 되지요. 그리고 나온 앨범, The Slim Shady.

('the slim shady LP'의 타이틀곡 My Name is)

대단히 사랑받습니다. 사실 지금은 힙합이 빌보드 차트 전체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막 치고 올라오려는 중이었지요. 헌데 이 음악, 어찌되었건 흑인이 주류가 될 수 밖에 없는 음악인데 미국 사람들의 마지막 심리적 방어선 - 그래도 흑인 문화가 메인이 되기는 이르지 않냐? - 을 무너뜨리는 흑인보다 더 흑인음악을 잘하는 백인이 등장한거죠. 시대적, 문화적 상황과 들어맞는 등장시기의 운도 따랐고, 무엇보다 랩을 말도 안되게 잘하면서 거침없이 사회적 발언을 내뱉는 그에게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그 증거, 그래미상 랩 부문을 얻어냈지요.


 이 패기 돋는 젊은 랩퍼의 등장에 사람들, 다음 행보를 기다리면서도 소포모어 징크스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신인이 두번째 작품을 말아 잡수는 현상)을 우려합니다. 헌데, 그 다음 앨범이 아직까지도 힙합 역사상 가장 성공한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The Marshall Mathers LP'입니다.

(The Marshall Mathers LP의 타이틀 'Stan', 단편 소설 한권을 읽는듯한 드라마틱한 구성, 이 와중에도 맞아떨어져가는 라임들, Dido의 아련한 목소리, 적절한 샘플링, 스토리텔링 힙합의 교과서)

'stan'을 통한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이거니와 적절한 스킷 배치를 통해 얻어낸 흐름, 이로서 관통되는 앨범의 주제 의식, 버릴 것 없는 트랙, 간간히 끼어있는 유명인들에 대한 풍자, 직접적인 비판 등등. 본인의 실명을 앨범 제목으로 얹어낸 에미넴은 이미 모든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에미넴 그 자체입니다. 어딘가 꼬여있는 본인의 인격을 그대로 반영해낸다고 볼 수 있겠는데, 힙합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매력이 한층 강렬합니다. 특히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두고두고 설전을 벌이게 되는 대목까지. 가사가 상스러워서 이 블로그의 속성이랑 맞지 않아 자세히 언급할수 없지마는....

 이제 에미넴은 Big name, 거물이 되었고 그 다음 앨범을 내기 전까지 엄청난 부담감을 가졌다고 하지만 'Eminem show' 앨범을 통해 꾸준히 대박행진을 해나가지요. 당시의 음반 판매량 어마어마합니다. 타이틀 곡은 멜로디만 들어도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도 거의 다 알 노래, without me 였지요. 왜 당시 김기수씨가 개그콘서트에서 댄서 컨셉으로 나왔을때 다리를 쭉쭉 찢으면서 안무를 하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던....

그리고 본인의 인생을 담은 영화 '8마일'이 나옵니다. 이 블로그에서 영화에 대해 다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역할을 맡아서 본인이 아니고서는 세상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 이후 그는 슬럼프에 빠집니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기도 하고... 한동안 활동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 딸 헤일리가 음악하는 아빠가 보고싶다고 하는 한마디에 그는 막이 내린 뒤에 박수에 화답해 다시 무대에 선 듯 앨범 'Encore'로 돌아옵니다.

(Encore의 타이틀, 'Just Lose it'. 걍 집어쳐, 나 쉬다 나와도 이정도야, 라고 선언하는 듯한 곡)


Encore 이후로는 정말 몇년동안 활동이 없었습니다. 몇몇 단체곡의 참여 정도? 이 와중에 할리웃 파파라치들은 엄청 살이 찐 그의 모습을 찍어나르고, 대중들은 이제 그가 음악적으로 끝난게 아니냐, 추측하기도 하고. 팬들의 긴 기다림 끝에, 2009년 드디어 닥터드레와 함께한 싱글 'Crack a bottle'에서 죽지 않은 위용을 과시하며 컴백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해 5월 드디어 정규앨범 Relapse와 함께 돌아오지요. Relapse, 병이 재발하다. 그다운 앨범명의 선택입니다.

(Relapse의 타이틀 Beautiful)

이제 그는 단순히 독하다기보다는 본인의 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인기인의 공허한 삶에 대해서 예전처럼 무지막지한 풍자가 아니라 덤덤한 어조로 엮어나가지만 마음속에 타고있는 불은 더욱 뜨겁습니다. Relapse 앨범에 대해서는 당시에 좋으냐 나쁘냐로 논쟁이 좀 붙었었는데, 전 사실 제일 좋아하는 앨범입니다. 좀 구려지고 단순해진 부분이 있는데 이게 오래 쉬다가 나온 형의 분노랑 딱 섞여서 제가 좋아하는 색이 보이거든요. 생각보다 좀 안팔리긴 했어요. 그나마 we made you 정도가 선전했고.


 그리고 1년만인 2010년 다음 앨범이 나왔습니다. Recovery. 회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앨범입니다. 다들 Love the way you lie 들어 보셨을거 아닙니까. 굳이 설명할 필요를 못느낍니다. 몇년 놀다가 딱 앨범 두장째에 다시 빌보드를 씹어먹는 위엄.

 

 이 와중에 첨언하자면, 에미넴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때문에 여성과 관계를 잘 설정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사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부실한 경우 여자를 성녀/창녀 둘중 하나로 대하게 되지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을 상상해보시면 됩니다. 사실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좀 많다보니 에미넴이 그저 그런 힙합식의 조크를 사용한다고 느낄지는 모르겠는데 그의 여성 비하는 그 과정이나 대상이 굉장히 구체적이지요.(전처였던 Kim과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페미니스트들과 동성애자들이 제일 혐오하는 음악인이기도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예민하신 분들은 그의 음반중 극소수의 곡만 골라 듣거나 아에 접하지 않는 걸 권합니다.


 뭐 어찌되었건 에미넴은 저에게 되게 말잘하고 싸움도 잘하는데 알고보니 사연많고 여린 동네 형의 이미지입니다. 그 와중에 겁나 문학적이고 딸도 잘챙기고...


 야구 명언으로 시작했으니 같은 방식으로 끝내보도록 하지요.그가 뮤지션으로서 한물 갔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휴식 끝에 싱글이 나왔을때 이제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들도 있고. 거기에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실책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도 야구 경기를 완벽히 지배할 수 없다. 단지 도전할 뿐이다. 

- 루 브록(1964~197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 명예의 전당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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