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2. 5. 9. 01:40

 

(상영작이라서 붙이는 안내 - 나름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대부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볼 예정이신 분은 스킵하시는 편이 재미질겁니다.)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다만 충족되면 그것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욕망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은 그것을 이룰 수 없을때입니다.

 '은교'는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박해일이 연기한 대시인 '적요'는 젊음, 그리고 이로 인해 얻을 수 있을 싱그러운 은교를 욕망하고 김무열이 연기한 젊은 작가 '지우'는 적요의 재능을 욕망하며 '은교'는 아버지를 욕망합니다. 친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라는 것의 존재를. 이건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의야하실 분도 있는데, 곧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하간 이 세가지 종류의 욕망 다 이루어 질 수 없지요.

 적요는 교과서에 시가 실린데다가 자기 이름의 문학관까지 지어질 대시인입니다. 국민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데다가 어느 자리에 나가도 사람들은 알아서 설설 깁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양반인데 아무래도 예술을 하다보니 좀 괴팍한 데가 있어요. 심하진 않지만.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제자가 젊은 작가 '지우'입니다만, 사실 이 사람은 작가로서의 재능이 전혀 없습니다. 좀 치사하달 정도로 영화는 그 점을 부각시킵니다. 은교의 거울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은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 아니 자칭 글 쓰는 사람이란 놈이 그런 감성을 이해 못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걸 이해 못한다고 말한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 드러나지요. 베스트셀러인 소설 '심장'을 히트시킨 상태인데, 알고보니 이것도 스승인 적요가 대필해준 거죠. 지우는 언제 진실이 드러날 지 몰라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에 더욱 더 열심히 적요를 모십니다.

 그러니까 지우를 움직이는 두가지 동력은 첫번째는 자신이 가짜 작가임이 드러날까 하는 불안감이고, 두번째는 혹시 적요의 곁에서 지내면 그 재능이 어느 정도 옮아오지 않을까 하는 욕망입니다. 불안감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가지는 대부분의 추악한 부분이 그렇듯이 지우는 이걸 포장하기 위해 적요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아버지같은 분, 사랑하는 선생님 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가 술을 먹고 이야기 할때마다 이게 꽤 많은 부분이 포장인게 드러나죠.

 재능에 대해서는...공대생이라서 한계가 있다는 강요를 영화는 내내 이야기 하지만 그건 사실 전공의 문제가 아닐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자기 재능에 맞게 문/이과가 꼭 나눠지진 않으니까요. 그보다는 애초에 문학 타입의 사람이 아닌거죠. 예술이란게 원래 그렇듯이 시간과 노력만으로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없기에 지우의 욕망은 더욱 이루어질 수 없는거겠죠. 그는 본인을 이적요 껍데기라고 표현할 만큼 적요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적요와 닮기 위해 무진 애를 쓰기도 합니다. 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대표하는 캐릭터지요. 안타깝게 지우의 가족관계에 대한 묘사가 없어서 직접적으로 추측할 수 없지만.

 한편 적요는 이런 와중에 여고생 은교를 만나게 됩니다. 일흔이 넘은 남자이지만 시인이라 감수성도 예민하고, 꾸준히 젊은 시절의 자신을 욕망하지만 이걸 억지로 부정하죠. 이걸 잘 나타내 주는 상징이 젊은날의 본인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입니다. 그 욕망을 부정하기 위해 책상위에 있던 사진을 엎어놓고 보질 않는데, 한창 은교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불타오르게 되면서 다시 세워놓게 되죠.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처럼. 

 욕망에 대한 가장 강렬한 표현은 무의식에서 나오는데(우리는 의식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꽤 많은 억압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습니다) 꿈은 그 무의식이 현실적 제약을 넘어 가장 크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가 얼마나 젊음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가 바로 꿈에서 나타나죠. 바로 은교가 헤나를 해주고 있을때 깜빡 잠에 드는 장면입니다. 은교를 쫒아 가기 전에, 그에 앞서서 적요가 더 신경 쓰고 감격한 부분은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입니다. 다시 젊어져 있는, 그 얼굴. 그러나 이 역시 이루어질 수 없기에 아주 아픈 욕망이죠. 젊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의 욕망의 다른 한편은 은교에 대한 욕망입니다. 이건 사실 젊음에 대한 갈구와 크게 다르진 않은데, 지우가 극의 후반부에서 대놓고 이야기 하듯 그의 은교에 대한 사랑은 더러운 스캔들로 세간에선 받아들여지기에 은교에 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가 젊음을 꿈꾸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은교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흔히 영화 '은교'가 받고 있는 오해가 이게 남성들의 판타지에 대한 영화라는 겁니다. 나이든 노인에게 어느날 갑자기 젊고 예쁜데다가 싹싹하고 얘기도 잘 들어주는 여자가 나온다니, 어떤 젊은 여자아이가 미쳤다고 그럴까. 이건 그냥 더러운 늙은 노인의 판타지가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은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근원은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변형입니다. 그걸 이야기 하면 이 남성 판타지가 부정될 수 밖에 없지요.

 영화 내내 은교가 유일하게 이야기하는 가족 구성원은 '엄마'입니다. 은교를 때린 것도 엄마. 은교가 슬퍼하는 것도 엄마. 왜 온갖 이야기를 다 하면서 아버지의 얘기는 없을까요. 전 영화를 보다 아마도 은교는 어떤 사정에 의해, 그것이 사별이든 이별이든, 아버지가 없을거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됐습니다. 즉 은교는 나이든 남성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극복이 유년기에 없었습니다.

 모든 여자 아이들은 어린 시절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겪는다고 합니다. 이건 아버지가 주는 애정에 있어서 아버지가 최초의 이성이기에 아버지의 애정을 어머니와 다투게 되는 건데, 이 다투는 과정 이후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당연하고 유일한 이성 관계임을 깨닫게 되면서 자연스레 아버지를 이성의 대상으로 놓지 않게 되고, 그 이후 다른 나이든 남성도 자연스레 '아버지'처럼 대할 수 있게 되는거죠.

 헌데 이 과정이 은교에겐 없었고, 그래서 아버지뻘, 혹은 그 이상 되는 남성과의 관계가 '왜 이성적 관계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무의식적 확립이 존재하지 아니했던 겁니다. 실제로 정신과에 '나이든 남성에게만 자꾸 끌리고 연애감정이 생긴다는 경우 이런식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없었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그러니 은교가 적요를 대할때의 기분은 아버지와의 관계와 연인과의 관계 그 두가지가 혼동되어 있었던 거죠. 적요를 놓고 지우와 갈등관계에 자꾸 휩싸이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정리하자면, 오히려 적요는 은교의 판타지에 부합하는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는 나이도 들었고, 아주 자상한데다가 경험도 많고 박식하고, 이루어놓은 것도 많죠. 엘렉트라 컴플렉스를 앓고있는 은교에게는 더 없이 끌리는 상대자로 보였을거에요.

 그리고 은교는 많은 사람들의 오해처럼 '뮤즈'가 아닙니다. 이건 영화 홍보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여하간 적요가 은교를 보고 좋은 작품을 탄생시킨 건 맞지만 그 전에도 '심장'으로 지우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걸 보면 이 사람은 그냥 타고난 천재입니다. 언제건 좋은 작품을 써낼 능력도 있구요. 적요가 작품을 써내기 위해 은교를 만난게 아니고 은교를 만나다보니 은교의 에너지가 그의 재능과 만나서 좋은 작품이 나온거죠.

 자, 그러면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 왜 은교는 적요의 이마에 키스하고 지우에게로 가서 섹스했느냐. 은교는 그때까지 그 소설을 지우가 쓴 줄 알아서, 본인을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해준것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어느 순간 극복되면서 여자 아이는 이제 다른 이성을 찾게 되는거죠. 적요의 존재는 그녀에게 아버지처럼 단단해졌고 이제 극복의 단계가 시작 된겁니다. 한번의 망설임이 나오는 걸 전 그 발전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이제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었고 새로운 이성에게 아내가 되어야 하는 거죠. 막상 적요와 섹스를 하자니 그는 늙은데다가, 알고보니 점점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오는거죠.

 헌데 조금 불쾌하게까지 느껴졌던 점은 이러한 상징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좀 더 은근한 맛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나요. 영화 내내 은교의 아름다움을 은근하게 표현했듯이. 조명담당이 엄청 고생했을 영화입니다. 빛을 통해 은교의 아름다움을 기가막히게 살려냈거든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박해일은 잘했는데, 그건 30대 배우 박해일이 연기를 잘한거구요. 왜 하필 그에게 분장을 시켜서 70대 노인연기를 시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날의 그의 모습이 나오는 그 몇 컷을 위해서? 젊음에 대한 갈구는 젊은 사람에게서 그렇게 쉽게 나오는게 아닙니다. 이건 감독의 무리수죠. 투자 유치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장하느라 고생했을 해일씨에게 박수.

 김고은은 신인답게 연기가 불안정한 장면이 좀 있었지만, 한예종 출신이라 기본기가 뛰어나다는 인상도 많이 받고, 딕션도 좋고. 역시 몇몇 장면에서 호흡과 발성이 좀 떠 있는게 걸리긴했지만 은교 캐릭터 자체가 튀는 느낌을 줘야 되서 크게 무리수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출 연기하느라 고생했어요. 몸이 예쁘던데.

 가장 안정되고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되는 배우가 김무열입니다. 단순한데 안그럴려고 노력하는 캐릭터가 연기하기 은근히 힘들거든요. 그 세밀한 허세를 스스로 참아내고 연기해야되니까.

정지우감독의 연출은 옛날에는 참 신선한 것이었는데 벌써 영화 해피엔드가 곧 15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노장감독을 보는 느낌이 났습니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구요. 소설을 읽은 분들은 오글거리는 장면이 소설에서 더 많았었다는데, 신선한 영화를 만들라면 '헐'에피소드 같은건 좀 빼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70대 노인과 10대 소녀는 굳이 그런 유치한 예 말고도 차이가 많거든요.

노출 논란같은게 별로 의미있어 보이는 영화는 아닙니다. 벗는다고 야한게 아니거든요.

 

한줄평 : 원래 사람은 꼭 못 얻을걸 얻고싶어 하지요.

★★

 

 

 

 

 

posted by 박과장 2012. 5. 6. 02:09

 


 2000년대 이후 제작비가 100억원 이상 들어간 영화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괴물, 디 워 이상 다섯 편이라고 합니다. 백억이라는 돈이 감이 오십니까? 살면서 한번에 가장 많은 돈을 쓴게 기껏해야 비행기표 정도인 저는 잘 감이 안옵니다만. 어찌됐건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는건 꽤 많은 사람의 미래와 생각을 짊어지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큰 영화를 만드는 일을 감독들은 꼭 축복이라고마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의 초기작들 처럼 직접 투자하거나 아는 사람들정도 선에서 책임이 멈추고 리스크가 적으면 참 다행이지만 큰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게 되죠. 여러 사람의 밥줄이 걸린 문제가 됩니다.


 처음 '괴물'의 제작소식을 들었을때 들었던 느낌은 당황에 가까웠습니다. 이미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제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순위권에 들어있었고, '이야기'에 탐닉하고 디테일의 미치는 그의 특성 상 블록버스터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아무튼 제작소식을 들은 날 부터 영화 '괴물'에 관한 어떤 사전정보도 얻지 않게 노력했습니다. 미리 알고가면 김샐것 같아서.


 그리고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뛰어갔습니다. 너무 궁금해서지요. 세상에 봉준호가 괴물이 나오는 블록버스터를 찍는다니. 저 사람 디테일 좋아하는데 CG에 만족 못해서 결국 탈쓰고 한건 아닐까. 시작하자마자 괴물이 나오는데 송강호가 이단옆차기를 날리면서, '여기가 스케일의 왕국이냐'라고 일갈하진 않을까. 혹은 주인공들이 생각보다 엄청 쬐끄만 괴물을 키워주는 영화는 아닐까? 생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더군요. 괴물은 스케일 큰 영화이면서 이와 동시에 '안티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해서 100억을 넘게 쓴 영화가 안티블록버스터일수가 있을까. 정확히 얘기하면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장르적 관습에 이단옆차기를 날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런지 풀어보지요.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주한 미군 엉아들은 버리면 안되는 포름알데히드 같이 위험한 화학물질을 처리하기 귀찮아서 그냥 한강에 풀어버립니다. 여기에 노출된 탓인지 물고기 종류의 변종으로 보이는 '괴물'은 한강에서 요상한 형태로 무럭무럭 자라나게 됩니다. 키워드 첫번째. 왜 미군이 '괴물'현상의 원인일까요? 여러분이 알고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에서 미군은 어떤 모습입니까. 대체적으로 걔들은 정의의 편에 서 있고, 때론 주인공의 소속이기도 하고, 마지막에 사건을 잘 정리해주기도 하고 그런 애들인데, 미군이 오히려 악몽같은 현상의 원인이랍니다. 딴지 걸고 시작하지요.

  

 그리고 나타난 우리의 주인공 송강호는 톰크루즈나 브래드피트가 절대 아니죠. 외모도 평균 이하인데다가, 뭐 잘하는게 있기는 합니까. 돈을 잘 벌기를 합니까. 중학생인 딸내미한테 맨날 쿠사리나 먹는 마음만 착한 아버지입니다. 키워드 둘. 주인공은 선망의 대상이 아니어라. 그 조력자인 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바쳤으나' 현실은 백수인 박해일, '실력은 있으나 새가슴이라' 맨날 금메달 하나 못따는 양궁선수 배두나. 다들 프로페셔널 하다기에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들 빠진 인물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상대하는 괴물은 국민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딸이자 조카이자 손녀인 고아성이 납치된 상황 때문에 이 나사빠진 사람들이 괴물하고 싸워야 되는 거죠. 하지만 괴물을 때려잡는 과정을 통해 모두들 성장하는 모습이 또 재미있습니다. 박해일은 유일한 재주이던 도주와 화염병 투척을 통해 괴물을 때려잡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배두나는 인생에서 가장 떨릴 화살 한방을 성공시키면서 본인의 단점이였던 나약한 멘탈을 극복하지요. 게다가 송강호는 점점 철이 들구요.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반미영화다라는 소문이 돌았었습니다만, 그냥 이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가 얼마나 따져보면 웃긴지 엿맥이고 싶었던 걸로 보입니다. 특히 강하게 변명하는 듯한 장면이 있죠. 처음 나타난 괴물에게 송강호가 한방 먹이려고 무거운 돌을 들때, 같이 돌을 들어주는 사람은 암만 봐도 미군 병사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괴물에서 굳이 '비판'씩이나 하는 부분을 찾는다면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시스템으로 사람을 지배하려는 상황 자체겠지요. 이런 비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누명을 씌워서 송강호를 잡아 가둬놓았을때, 송강호가 탈출하려는 장면에서 제일 잘 드러납니다. "노 바이러스? 바이러스 없다는거네?" 이 대사 한마디에, 그간 여러가지 정보를 차단하므로서 개인들을 암암리에 억압해 왔던 시스템의 존재가 코믹하지만 살벌하게 드러나는 거죠. 


 처음부터 끝까지 봉준호 감독이 왜 봉테일인지 섬뜩하게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 가볍다고 시치미도 많이 떼지요. 언제들어도 대단한 변희봉의 명대사. "저쪽 테이블에서~ 오징어 다리가~" 하는, 그런 장면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고아성의 빈소 앞에서 가족들이 다같이 오열하는 장면입니다만.


 주인공이 많은 영화인데다가 배우들이 다들 베테랑이라 정확히 자신의 몫을 연기합니다. 봉준호는 작정하고 송강호의 송강호스러움을 끌어냈으니, 이건 그냥 송강호로서 훌륭한 연기이고, 의외로 재미있었던건 변희봉의 연기지요. 엄숙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 볼 수 없는 나이든 남자의 연기는 의외로 삶의 질곡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웃기는 대사를 해도 슬픈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 영화로 데뷔를 한 고아성의 연기도 재미있습니다. 역시 이런 역할은 경험이 없어야 됩니다. 봉준호감독은 통제가 좀 힘들더라도 신인연기자를 쓰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그랬고.

 위기가 오면 가족은 뭉치나 봅니다. 고아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배두나가 나중에 금메달을 땄는지 안땄는지 가지고 당시에 말이 많았었지만 사실 영화라는게 그게 중요한건 아니죠. 




덧붙임 하나. 괴물 목소리는 오달수가 녹음했다더군요. 흐하하...

덧붙임 둘. 속편 계획은 엎어졌나봅니다. 강풀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다그랬던 것 같은데.


한줄평 : 그런데 누구한테나 괴물을 있습니다.


★★★★

 

posted by 박과장 2012. 5. 3. 01:19

 

 감정의 유통기한은 어디까지인가요.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은 누구나 주목합니다. 아름답고, 빛나고, 설레는 그런 날들이니까요. 모든걸 집중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언제 우리는 사람을 잊고 언제 우리는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지나요.

 제목부터 봄날이 가버렸다니 좀 슬픕니다. 사실 우리는 봄날이라는 단어를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이야기할때 사용합니다. '왕년'같은 개념이죠. 글을 쓰는 오월 초에 날씨가 너무 더워서 봄날이 가버린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런 용법은 아닐거에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녹음실에 다니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지방을 다니면서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강릉에 있는 방송국 PD인 은수(이영애)와 함께. 같이 여행을 하게 되는 일이라서인지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한편 상우의 아버지는 일찍 상처했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진즉 작은마누라를 얻어서 나간 남편을 잊지 못해 매일 매일 기차역으로 옷을 정갈하게 챙겨입고 나갑니다.

 한창 아름다운 사랑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장가가라는 가족의 압박도 있고 해서 상우는 은수에게 아버지에게 인사를 가자고 이야기하는데,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이게 엄청나게 부담스럽습니다. 말을 돌리고, 말을 돌리다보니 마음이 상하고, 닫히게 되고, 한 달만 떨어져있자고 상우에게 이야기 하게 되죠. 그 와중에 자연스레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기도 하고, 결국 상우에게 이별을 통보하게 됩니다.

이후 상우는 좀 망가집니다. 술에 잔뜩 취해 찾아가기도 하고, 은수가 새로 뽑은 차를 긁어놓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죠. 다니던 녹음실을 때려치려고 하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안보게 된 두사람,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어느날 은수가 자신의 삶에 상우가 꽤 큰 의미였는지 알게 됬거든요.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녀 앞에 서 있는 상우는 사실 그 때의 상우가 아닙니다. 충분히 상처받았고 그녀에게 정이 떨어졌으니까. 다시 시작해보려고 하는 은수를 잘 떨쳐냅니다.

 "봄날은 간다"는 관계의 시작보다 그 끝에 초점이 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한거죠. 가장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은수와 상우가 극의 절정부에서 이별을 맞이하게 되니까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도 둘의 이별장면입니다.

- 헤어지자.

- 내가 잘할게.

- 헤어져.

-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상우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변하지만(마지막에 은수를 다시 잡진 않잖아요) 그의 세계 안에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매일 곱게 차려입고 기차역으로 나가는 상우의 할머니나 이른 나이에 상처했지만 재혼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를 보세요. 이건 상우가 환경적으로 학습한 것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닮아 조용한 그의 성품에도 잘 걸맞는 것이죠.

 그러나 은수의 세계는 그러지 않습니다. 은수는 일단 이성에게 다가가는데 큰 장벽이 없는 사람입니다. 상우를 처음만났을때 척하고 손을 내미는 모습이 그렇죠. 새로운 것에 매력을 잘 느낀다는 것은 좋아하던 것을 잘 바꾼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게다가 한번의 이혼을 통해 남녀 관게에 대한 냉소적인 생각도 묻어납니다. 사실 결혼이라는 과정까지 가는데에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을텐데 그게 무너졌으니 냉소적일 수 밖에요.

 허진호 감독은 이 둘의 감정선을 아주 내밀하게 그려냄으로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멋대로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을 사랑 삼부작이라고 묶어서 부르곤 하는데, 이 세 편 모두 현실적인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장벽과 뜨거운 사랑이 부딪힐 때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봄날은 간다는 극적인 장치를 가장 배제함으로서 너무나 현실적이라 가슴 아픈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 이야기를 해볼까요. 원래 이영애는 현실적인 영화랑 잘 안맞는 배우중에 하나입니다. 너무 예쁜 비주얼이 그렇고, 사람들이 잘 못느끼지만 발성이 굉장히 특이한 배우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주변에 목소리가 이영애같은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그 목소리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는 참 좋은데 이렇게  현실적이 영화에 어울리는가 하는 걱정은 좀 됩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허진호 감독은 굉장히 짧은 대사길이를 주었고, 이 작전은 잘 먹혀들어갔습니다. 영화 내내 이영애가 길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별로 없어요. 게다가 외모가 주는 느낌이 은수와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구요.

 제가 유지태라는 배우가 참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기 시작한게 바로 봄날은 간다입니다. 아직 소년같은 얼굴이 있던 그때의 유지태에게 이 배역은 몸에 잘 맞는 옷입니다. 느릿하지만 처절한 연기. 사랑이 분노로 뒤바뀌어 버린 상황을 어쩔줄 몰라하며 노래책을 들여다보며 '미워도 다시 한번'을 불러제끼는 장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의 얼굴들 중 하나입니다.

 조연들은 크게 비중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상우 아버지역할의 김인환씨는 아내 없이 아들을 키워온 가장이자 엄마역할을 하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을 슬프지만 굳건하게 보여줍니다. 인상적인 연기에요.

 

언젠가 봄날은 오고, 때로는 가기도 합니다만, 마지막 재회의 장면에서 두 사람이 걷는 길이 벚꽃이 만개한 눈부신 장면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이러니이자 아름다움일겁니다. 어떤 이별은 가장 아름다울때 오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전 사랑을 믿고 한번 더 슬픔을 각오하려 합니다만.

 

한줄평 : 때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일이 사랑의 종말이 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