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2. 4. 24. 04:05


 

 저는 현역 한국 감독중에 이창동을 제일 좋아합니다. 어디 가서 이렇게 터놓고 말한적이 없는데, 다른 감독들 섭섭할까봐, 이참에 밝혀 둡니다.


 그래서 이 리뷰가 쓰기 제일 어렵습니다. 이창동의 영화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니까 제가 한국영화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접근할 수 있는 방법도 무궁무진하고 이야기거리도 너무 많은 영화입니다. 최대한 느끼는 그대로 써볼까 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여자 신애(전도연)는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으로 갑니다. 별 대단한 이유는 없어요. 아직 남편을 잊지 못했을까요. 그냥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던거겠죠. 가던 길에 차가 고장나서 카센터에 구조 요청을 하는데 그때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가 와서 차를 견인해 갑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신애는 종찬에게 이렇게 묻지요, 밀양은 어떤 곳인가요. 종찬은 대답합니다. 글쎄요. 한나라당 도시고, 부산 가깝고 말씨도 부산 말씨고....이어지는 신애의 질문, 밀양이 한자로 무슨 뜻인지 아세요? 종찬 말합니다. 우리가 어데 뜻보고 삽니까. 신애가 답해줍니다. 비밀 밀, 볕 양, 비밀의 햇볕, 밀양. 멋있지 않아요? 아무튼 종찬은 신애가 첫눈에 맘에 듭니다. 서른 아홉먹은 노총각이기도 하고.


 영화의 초반부는 서울살던 신애가 밀양에 적응하는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동네 만만찮게 보수적입니다. 옷가게 아줌마한테 가게가 칙칙하다고 벽 색좀 바꾸라고 했다가 쿠사리를 먹기도 하고. 동네 약사 아줌마는 맨날 교회 다니라 그러고. 그런 동네입니다. 피아노를 전공한 신애는 학원을 열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좀 있어보이는 척도 하고 그렇게 적응해갑니다.



 신애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 준입니다. 그런데 준이 유괴당하고 결국에는 살해당합니다. 신애의 삶은 절망과 분노로 가득찹니다. 이 때 신애를 붙잡는 곳이 교회입니다. 아들의 상실로 너무나 괴로워하던 그녀는 교회 생활을 통해 너무나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용서하겠노라며 자신의 아들을 유괴했던 범인을 교도소로 면회를 가는데. 신애가 용서한다고 말하기도 전에, 범인은 감옥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 모든 것을 회개하고 용서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애에게, 자매님께서도 이제 평온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신애, 면회장소를 나오자마자 기절합니다. 내가 용서하기 전에, 어떻게 저 사람이 용서받을 수 있는건지. 

 

 이후 신애는 온몸으로 신을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위해 예배를 하고 있는 곳 유리창에 돌을 던지기도 하구요, 교회 장로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하려고도 하고, 괜히 지나가다가 하늘을 보며 "난 너한테 안져, 절대 안져"라고 말하거나, 밖에서 교회 행사를 하고있는 곳에서 재생되고 있던 찬송가 대신에 김추자가 부른 '거짓말이야'를 틀어서 여러 사람을 황당하게 하기도 하지요.


 결국 밤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더니 집에서 혼자 과일을 깎아먹다가 손목을 그어 자해를 합니다. 천장을 보며 내뱉는 신애의 한마디, 봐? 보여? 하지만 정말 죽음이 찾아올듯 출혈이 계속 되자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맙니다. 살려주세요.

 

 이후 병원에서 퇴원하고서는 신애 삶에 어느 정도 변화의 물결이 보입니다. 옷가게 아줌마는 인테리어를 바꿨더니 정말로 매상이 올랐다고 하고, 신애 스스로도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자르며 앞으로 정돈된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저 멀리 마당 한쪽 더러운 구석을 비추는데, 그냥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 쬡니다. 


 이게 밀양의 이야깁니다. 중간중간 생략된 부분이 있지만, 큰 줄기는 이래요. 어떻게 보면 작은 이야기입니다. 그냥 아이를 잃은 한 엄마의 이야기 일수도 있고. 다만 우리 모두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계속 걸리게 되는건 신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단히 크게 오해받고 있습니다. 먼저, 영화에서 신애가 겪는 딜레마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봅시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하고 구원을 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기독교가 인간의 불완전성에 기인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너무 약하고 속된 존재여서 다른 이의 죄를 사할 수 없는데다가 아담과 이브의 원죄 이후 본질적으로 죄인입니다. 이는 예수가 매춘부의 이야기를 할때 잘 드러나지요.("너희들 중 죄없는 자만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이렇듯 어차피 인간이 인간에게 죄 있음과 죄 없음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한 행위이기에 모든 이의 죄를 사한 예수가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독교인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것이 크게 의미있는 행동은 아닐 지 몰라도 남을 용서하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철저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범인을 용서하러 간 신애의 행동 자체가 크게 의미있지 않아요. 죄를 사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까. 

 

 교도소를 방문한 이후 신애가 괴로워 하는 것은 이러한 종교의 질서와의 대립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단순히 기독교 영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종교가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를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 영화는 용서가 그렇게 쉽냐? 너같으면 용서하겠냐? 에서 끝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웅변학원장이 신애의 아들을 죽인건 신의 잘못입니까? 혹은 범인이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일은요? '밀양'에서 이야기 하는 신의 의지는 숨쉬는 공기, 내려쬐는 햇빛과 같습니다. 특정한 방향으로의 흐름이 아니라 무릇 그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겁니다.


 

 하늘을 보며 '너!'라고 외치면서 절대 질 수 없다는 신애. 원작 소설(이청준, 벌레 이야기)은 유괴 후 살해까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같지만, 신이 먼저 용서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여자주인공은 약을 먹고 자살을 합니다. 사실 신애에게 죽음은 굉장히 쉬운 결말로 보입니다. 미래가 캄캄하고 유일한 희망마저 빼앗긴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가 몇개나 된답니까. 다만 이 이야기는 신애를 쉽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죽음으로서 하나님, 신, 절대자의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신애가 다시 살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서 다시 그 질서안에 들어왔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려쬐는 따스한 햇빛은 그 절대자의 마음이 그저 모두를 한결같이 바라본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밀양의 영어 제목이 secret sunshine인 것 또한 그 내려쬐는 햇빛이 신의 보살핌임을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기독교적이라고 잘못 받아들이지만 아주 기독교적인 영화입니다. 이러한 고통들이 다 신에 의한 장난이라면서 싸우려드는 신애지만 신은 그 분노마저 그저 따스하게 바라보고 있고, 신애는 결국 다시 신의 질서 안으로 돌아오지요.


 배우 전도연 인생에서 아마 최고의 영화일 겁니다. TV드라마 퀸에서, '접속','약속'을 통해 충무로 흥행 퀸이 된 그녀입니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했는데, 연기 욕심이 상당히 있는 배우여서 그런지 재미있는 행보를 걸어왔습니다. 특히 '피도 눈물도 없이'는 기존의 전도연을 완전히 뒤엎는 시도였죠. 성공여부는 확답하기 쉽지 않지만. 그리고 '너는 내 운명'의 매춘부 역할을 통해서 그동안 전도연의 연기에 항상 물음표를 달고 있는 평론가들에게 느낌표를 선사하면서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아마도 이창동 감독이 밀양에서 그녀를 선택한 것도 너는 내운명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상의 원톱 주연입니다.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준 영화제도 있지만 전도연의 영화지요. 연기할 거리가 무궁무진하게 많고,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다가 감정이 안나오는 날은 과감히 촬영을 접는 등 전도연을 끌어내는데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였는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전도연이 얻게 됩니다만.

 

 하지만 낭중지추라, 송강호의 연기는 말도 안되게 영화 속 그 인물 김종찬 본인입니다. 적당한 속물성이 있지만 한 여자에게만 헌신하는 노총각의 얼굴을 완전히 뒤집어 씁니다. 사실 젊은 감독과 작업을 할때 송강호는 어떤 역할을 맡던 본인 색깔이 많이 묻어나는 배우인데(이게 장점일 때도 있고 단점일 때도 있지요.) 이 영화에서만큼은 감독과 시나리오에 철저히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여지껏 송강호가 처음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영화라는데 준비를 얼마나 지독하게 헀는지 그냥 본인 말씨같구요. 특히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혼자 노래를 부르는 씬은 무릎을 치며 이야, 그래 한국 영화에는 송강호가 있었어! 라며 감탄하게 됩니다.


 장면별로 상징성을 따지다 보면 리뷰를 수십장을 써도 모자랄 작지만 거대한 이야기라서 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너무 아프게 좋아하는 영화라서. 자꾸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 리뷰만 쓰다간 곧 밑천 떨어질텐데. 그래도 그냥 쓰려구요. 좋은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면 누군가 보고 같이 좋아해주지 않겠습니까.


한줄평 : 어떤 사랑은 소리 나지 않고 눈부시지 않지만 그저 우리에게 항상 머무르고 있습니다.


★★★★★











posted by 박과장 2012. 4. 23. 03:39

한국영화


밀양 (2007, 이창동 / 전도연 , 송강호)

봄날은 간다 (2001, 허진호 / 유지태, 이영애)

범죄와의 전쟁 (2012, 윤종빈 / 최민식, 하정우)

파주 (2009, 박찬옥 / 이선균, 서우)

비트 (1997, 김성수 / 정우성, 고소영)


외국영화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2009, 쿠엔틴 타란티노 / 브래드 피트, 멜라니 로랑)

디스트릭트9 (2009, 닐 블롬캠프 / 샬토 코플리)

고백 (2010, 나카시마 테츠야 / 마츠 다카코, 오카다 마사키)


딱히 순서는 없습니다. 빨리 보고 싶으신 글이나 추천하고 싶으신 작품 있으시면 리플을 부탁합니다.

posted by 박과장 2012. 4. 23. 03:07

 


 인터넷에서 쓰는 말 중에 '게슈탈트 붕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게슈탈트는 독일어로 형태, 와꾸, 뭐 이 런 뜻인데 이게 붕괴된다는 말인데... 쓰이는 의미는, 어떤 단어를 계속 반복해서 말하거나 연상하면 그게 그 단어로 느껴지지 않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실거에요. 하나의 단어를 계속 쳐다보면 이게 활자 내지는 그림으로 느껴지고 자연스레 떠오르던 의미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일.


 쌩뚱맞게 영화 리뷰에서 게슈탈트 붕괴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건, 어떤 개념을 아주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애초에 우리가 막연히 희미하게 생각하던 특성들이 없어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하고싶어섭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세요. 그 단어가 주는 느낌과 실제 여러분의 가족과의 삶을 비교해 보세요. 전자는 상징이고 후자는 본질입니다. 똑같이 느껴지시나요? 글쎄 같진 않을겁니다. 본질을 파고드는 순간 상징의 대표성은 사라지고 현실이라는 무거운 침전물이 남습니다. 찝찝하지만.


 허진호 감독은 꾸준히 멜로영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전작 '봄날은 간다'가 그러했듯이, 이번에 이야기할 영화 '행복'또한 사랑이라는 일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상징은 사라지고 무거운 현실이 남습니다. 줄거리로 들어가 보죠.


 남자 주인공 영수(황정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흥청망청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클럽을 운영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옆에서 자고 있는 여자가 거의 바뀌는, 그런 종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클럽은 망하고, 만나던 애인은 떠나가고. 결정타는 끊임없이 부어댄 술때문에 간경변에 걸려버린거죠. 이에 주변사람들에게는 유학간다고 거짓말을 해놓고는 시골에 있는 요양원 '행복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행복의 집에서 8년째 살며 스텝으로도 일하고 있는 은희(임수정). 심각한 폐질환을 앓고 있지만 굉장히 긍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이 긍정적인 자세가 과연 좋은 것인지는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지요) 심하게 숨이 차면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는 여자에요. 영수에게 오히려 먼저 다가가서, 연애를 제안합니다. 집칸은 남아도는 시골이니, 같이 살지 않겠냐고.

 

 여기까지는 우리가 자주 보던, 혹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전개입니다. 힘든 세상, 사랑이라는 구명줄, 서로에게 반하는 남자와 여자. 은희는 굉장히 섬세하고 영수를 잘 챙기는데다가 싹싹하고 예쁘기까지 합니다. 같이 시골에서 세간살이를 장만하면서 신혼생활 비슷한걸 즐기죠. 심지어 영수는 그녀의 지극정성에 몸도 거의 완쾌가 되고, 케어를 감사하면서, 참 행복하다, 라고 느낍니다만.


 그때 그 전에 만나던 애인 수연(공효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영수에게 이야기하죠. 이거 너 살던 모습 아냐. 너 이렇게 살아서 좋니? 이 질문을 살작 바꿔서 이야기하면, 이거 니가 알던 행복이 아냐, 너 정말 행복한거 맞니? 아, 영화의 제목은 이래서 행복이군요.


 사실 영수도 꽤 답답함은 느끼던 차였습니다. 영화 내에서 몇몇 장면을 복선으로 보여주기도 하죠. 삶의 형태가 갑자기 달라졌는데, 그 순간이 아무리 즐거워도 오랜 세월 다져진 본성은 벗어낼 수 없는 것일까요. 영수와 은희의 다툼이 생기고 영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날 버려줘, (왜냐하면)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어. 아주 전형적인 죄책감 피하기죠. 사실 은희는 영수에게 참 잘해줬거든요. 그러니 은희를 버리겠다고 말하는건 영수 스스로 개새끼가 되는 길이니까. 이에 은희는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내가 그여자보다 잘해줄게, 나 정말 잘할수 있어 나 진짜 잘할수 있어.

 결국 영수는 은희를 떠나고, 홀로 남았던 은희는 이내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영수는 다시 알콜중독이 되어 재활센터를 전전하다가 은희의 임종을 듣고 그녀의 유품들을 보며 울부짖습니다.


 읽는 분들에게 한번 더 질문을 드려봅니다. 은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영수는 행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은희때문에 불행해서 자신을 버려달라고 말합니다. 아니 그러면 둘이 신혼생활을 즐겼던, 그때 행복이라 믿던 것들은 대체 다 뭐랍니까?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를 재료로 하는 멜로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나아가 허진호라는 감독이 그리는 말하는 사랑이라는 행위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며 눈물짓지만 결국 그 상대방이 다시 손을 뻗어왔을때 이미 마음이 식어 웃어 넘기기도 하고('봄날은 간다') 행복을 주던 그 행동들도 마음이 떠나면 귀찮고 나를 옭아매는 밧줄처럼 느껴집니다.('행복') 

 결국 대화에 비유하자면, 둘이 같은 언어를 써야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 하려고 해도 한명은 중국어를 쓰고 한명은 일본어를 쓴다면 좋은 결과가 일어나지 않겠죠.

 하지만 마음이 달아올라있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것이 그 사랑이라는 감정입니다. 이 과정에 서툰 등장인물들은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 행복의 임수정) 자신을 낮춰서, 세상에서 흔히 찌질하다고 말하는 캐릭터가 되므로서 상대방을 잡아보려고 하죠. 결과는, 현실이 그렇듯이 실패지요. 이들이 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허진호 감독의 세계 안에서의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세계와 실제 세계가 얼마나 다르냐면.... 거의 같겠지만.) 언젠가 다른 리뷰에서 허진호 월드에 대한 정리도 한번 해봐야 할듯 합니다만.

 여하간, 그래서 은희가 죽은 뒤 황정민이 그녀의 옷가지를 붙잡고 오열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사족으로 느껴집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일방성을 드러내기 위한 영화인데, 뒤늦게 죽은 그녀의 흔적을 찾는 그의 모습은 돌아온 탕자 클리쉐인데다가 논점 이탈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또한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 상황에 클리쉐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이미 많이 보고 듣고 느껴왔던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녀를 떠나고 다시 폐인이 되었을때 영수는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을겁니다. 하지만, 그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때부터 영수와 은희의 시간은 영수에게는 불행이었습니다. 그건 본질적으로 불행 맞아요. 영수가 원치 않는 상황이니까. '행복일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하는게 정확합니다. 다만 돌아온 탕자가 된 영수가 반성해야할 것은 아, 그게 행복이었어 가 아니라 아, 그걸 행복이라고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가 되어야겠죠. 영수의 입장쯤 되면 이미 거기까지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배우들 이야기를 좀 해보죠. 황정민은 성실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입니다. 성실한 연기를 합니다. 행복에서도 그렇죠. 헌데 앞부분에서 흥청망청 노는 역할에 좀 어울리지 않는건, 작품이 거듭할 수록 본인의 이미지에 좀 매몰되는 느낌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우직하지 않은 역할을 맡은 그를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 좀 뺀질뺀질하고 유려한 연기를 한번쯤 보여줌으로서 본인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에서 그의 연기가 별로라는 얘기라기보다는, 너는 내 운명 이후로 맡은 역할들에 대한 불평입니다. 


임수정은, 예쁜 배우들이 흔히 듣는 연기 못한다는 편견에 대해 어느 정도 피해를 보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연기를 아주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배우지요. 아직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임수정이 보이니까. 대중 매체에서 CF로 자꾸 소비되는 것도 문제구요. 다만 이 영화에서는 본인에게 어울리는 배역에 잘 캐스팅 되었습니다. 폐병 환자 클리쉐에도 맞고. 이 외에 공효진 정도가 비중있는 배역인데 그나마도 얼마 나오질 않아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사실 이토록 이기적이어서, 나에게 헌신적인 이에게는 매력을 느끼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매력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매력을 느끼려고 노력하는건 좀 우습지만, 우리는 영수와 은희를 보면서 나에게 정말로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지 고민해볼 필요는 있을겁니다.

한줄평 : 찌질한거 함부로 까지 마세요. 다 그런적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