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5. 5. 19. 09:34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1, 2, 3루의 역경을 거치고 다시 홈으로 금의환향하는 신화적인 구성도 좋고, 공 하나 하나마다 경우의 수가 달라지는 확률의 맛, “타임 아웃이 없는” 승부의 맛,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지만 결과는 모두 다른 인생의 맛도 좋습니다. 반면, 저는 한국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 번 경쟁에서 미끄러지면 이를 되돌릴 길이 요원해집니다. ‘운동만’ 하도록 평생 요구받아온 그들은 운동이라는 끈을 놓쳤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 메이져리그의 선수들이 은퇴 이후 전공을 살려 다양한 진로를 찾아나가는 것과 아주 대비됩니다. 



 영화 ‘파울볼’은 이 두가지 모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엘리트 체육의 경쟁구도 속에서 미끄러진 야구 선수들을 재기하고자 창단된 야구 구단 ‘고양 원더스’와 그 감독 ‘김성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벤쳐 재벌이 되었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이 여전해서 수익은 커녕 오히려 돈을 계속 투자해야하는 독립 구단, 그것도 선수가 잘하게 되면 프로로 스카웃 보내고 그것을 목표로 삼는 구단을 만드는 허민 대표와, 수많은 프로 구단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이러한 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김성근 감독 모두 실리, 상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일종의 성스러움을 부여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대단함을 느끼는 순간은 의외로 단순해서, ‘나같으면 못하겠다’ 싶은 결정들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곤 하죠.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감독 김성근과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입니다.

 김성근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이야기들과 책들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의 리더십은 전형적인 일본의 ‘아버지’ 그 자체입니다. 아주 혹독한, 모두가 나가 떨어질 만큼의 지독한 훈련을 시키고 선수들을 괴롭(?)히지만 선수들에 대한 강한 책임 의식, 이 배가 침몰하더라도 배에 마지막까지 타고 있겠다는 선장의 마음같은 것이 김성근의 리더십입니다. 워낙 사회에 어른의 모습이 없다는 이야기가 팽배하다보니(사실 이는 세대 갈등이 주요 원인입니다만) 이 리더십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사람들이 따지고 들기 보단 그저 좋은 쪽으로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결과가 좋으니 (고양 원더스는 꽤 많은 프로 선수를 배출해냈고, 그 이전에 맡았던 SK는 3번의 우승, 1번의 준우승을 이루어 냈으며, 현재 만년 꼴지이던 한화를 중위권에 안착시켰습니다) 별 반론이 나오기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하지만 분명 독재적이긴 하죠.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경쟁에서 도태되었던 이들이기에 다양한 직업출신이기도 하고,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야구 소년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하나, 프로 진출뿐입니다. 이러한 간절함이 별다른 대본이나 연출 없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드라마가 됩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는 뽀얀 국물의 설렁탕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심장을 뒤흔드는 이야기나 소름끼치는 반전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실이라는 형태가 주는 먹먹함, 제대로 끓인 설렁탕의 묵직함 처럼 가슴을 채워오는 그 뭔가를 기대하지요. <파울볼>을 그 점에서 썩 훌륭한 이야기 소재를 썩 훌륭햔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담아낸 설렁탕 한 그릇 같은 영화입니다. 지금은 프로가 된 원더스 출신 선수들이 앞으로 해나갈 플레이와, 한화의 감독이 된 김성근의 발걸음 역시 이 영화의 관객들이 함께 계속해서 즐겨나갈 현재 진행형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줄평: 절박한 이야기의 힘.

posted by 박과장 2014. 8. 8. 00:33


 일전에 정성일 평론가 인터뷰에서 본 이야기인데, 정성일씨가 차이밍량 감독을 만나서 물었답니다. "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입니까?" 그러자 차이밍량 감독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네요. "영화 만드는 사람의 내일을 걱정하면 좋은 영화이고, 온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나쁜 영화입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이 이야기는 책임감에 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던지 내가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는 거지요. 전혀 알지 못하는 것,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이치에 맞게, 허술하지 않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와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 이런 일들이 이야기 만드는 일의 기본적인 책임이며 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지점에서, "명량"은, '3부작의 일부가 아니라 한편의 영화로서' 볼때는 절대 좋은 영화가 아닙니다. 명량은 많은 인물들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갑자기 스크린에 나타난 진구는 종횡무진 뛰어다니다가 이순신 장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아까워하지 않으며 그의 부인으로 나온 이정현도 왜 말을 못하게 되었는지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건지, 진구는 어떻게 만났는지, 왜 진구를 저렇게 사랑하는지 아무 것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물론 고작해야 두시간 남짓의 시간만 주어지는 상업영화에서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도 상황을 납득시키는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것이 영화 만드는 이의 기본 소양이자 의무이자 능력입니다. 이걸 못하면 제대로 된 이야기꾼이 아닌겁니다. 


 하다못해 주인공인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조차 변변치 못합니다. 이순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외국인이 이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시 조정과 이순신의 관계에 대해 아주 단편적인 모습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정치에 의해 이순신은 고초를 겪었는데 이야기에 정치라고는 1그램도 없습니다. 그냥 "왜군은 나쁜놈인데 조선의 조정은 방해가 되고 그러니까 조정 대신들도 나쁜놈들이고 이순신은 착하고 그래서 나쁜놈들이 안도와주지만 나쁜놈들을 무찌른다." 이 이야기에서 한발짝도 진전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얘기는 일곱살짜리도 하겠습니다.

 

 아니 그냥 이 영화는 주제의식과 전투씬에 변태처럼 몰두한 나머지 나머지 부분은 그냥 도구로 이용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형성하고 있지 못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왜군 소속이지만 사실은 첩자로 나오는 오타니 료헤이는 어째서 조선군의 편인지 힌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냥 나와서 왜군이다가 조선군이다가 왔다 갔다 하며 쌍검만 휘두릅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 안에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도구로 인물을 만들어 막 가져다 쓸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한민 감독을 마이클 베이와 비유하여 이야기하더군요. 초기작인 '더 록', '아일랜드' 등에서 괜찮은 블록버스터를 만들던 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손을 대며 미취학아동 수준의 영화만 찍어내게 된 것처럼,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훌륭한 상업영화 데뷔를 했던 김한민 감독이 '명량'이후 계속 그저그런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찍어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트랜스포머에는 최소한의 예절이란게 있습니다. 적어도 그 영화는 로봇에 대한 애정은 있어요. 확실한 세계관이 있고, 로봇들이 굳이 지구에서 변신까지 해가면서 싸워야할 이유를 줍니다. '명량'엔 그게 없습니다.


 영화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김한민의 전작 '최종병기 활'은 저에겐 분명히 표절 영화였고(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명량'은 올해 본 영화중에 최악의 영화중 하나였습니다. 이미 기대치가 별로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없어졌어요. 어떻게 '극락도 살인사건'을 만들었는지 의아할 지경입니다. 이런 연출과 표절 아래에선 최민식의 연기에 대해 논하는 것 조차 무의미합니다. 그는 언제나처럼 훌륭한 배우입니다만,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끌려다니는 모습이 좀 안타깝긴 했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서 바라는 것은 모두 다를겁니다. 열대야로 지쳤는데 스크린에서 시원한 바다를 보며 피서를 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왜군에 맞서서 인간이 아닌 반신(半神)의 모습으로 온갖 역경을 말도 안되게 이겨나가는 이순신을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겁니다. 다만 전 최소한의 영화라는 형식에 대한 예의와 미학적 완성도를 필요로 합니다. 천만관객이 되거나 말거나 상업적 부분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큰 관심은 없지만, 적어도 천만을 돌파했을때 제가 한 자리를 보태줬다는 사실이 꽤 고통스럽긴 할 거 같네요.



 엔간해야지 봐주죠. 3부작 다 내면서 얼마나 대단한 설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편의 영화를 돈내고 보러 온 관객들에게 이러면 안됩니다.


한줄평 : 이것은 좋은 영화가 아니다.


posted by 박과장 2014. 7. 25. 02:25

비가 밤새도록 올 모양이다.


 당신이 한국에 산다면, 비 하면 여름날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봄비, 가을비, 겨울비라는 말은 따로 있어도 여름비라는 말을 따로 쓰지 않듯이, 비 하면 여름이다.

 

 요새야 소나기가 낭만 없이 스콜처럼 내린다지만, 불과 오년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었다. 예고 없이 내리긴 했지만 이렇게 낭만 없이 퍼붓진 않았다. 적당히 퍼붓는 소나기를 뚫고 손잡고 뛰어가기 괜찮았었다. 아마도 여의도였던거 같다. 직장도 안다니면서 왜 여의도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추억에는 논리가 없다-내 팔목을 붙잡던 여린 손목이나, 뛰어서 빗물이 첨벙, 하고 튈때마다 내던 새된 소리, 같던 것들이 떠오른다. 


 오년쯤 되고 술 담배를 즐기다보니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해어졌는지가 잘 기억이 나질 않게 되었다. 이름을 기억은 하지만 이름을 들어도 별 느낌이 나질 않는다. 그때는 죽을 것 처럼 힘들었던게 분명한데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하지도 않다. 



'id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4 - 마지막)  (0) 2019.03.18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3)  (0) 2019.03.14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2)  (0) 2019.03.13
쿠루메 - 후쿠오카 여행기 (1)  (0) 2019.03.12
시2  (0) 2018.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