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박과장 2019. 3. 12. 14:04

쿠루메-후쿠오카 여행기(1)


내 모든 여행이 대체로 그러했듯 이번에도 충동적으로 비행기표 가격을 보고 여행 출발을 결심했다. (왕복 10만원 가량.)

나는 비교적 일본 여행을 많이 가는 편인데, 평상시 지인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거리가 가깝고, 비행기 값이 많이 들지 않는다.

2.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3. 식당에서 실망할 일이 별로 없다.

4. (내 기준) 언어를 조금 할 줄 안다.


그러다 보니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 가고시마 등을 이미 다녀 왔다. 훗카이도는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논리적 판단 보다는 감정적 경험에 의해 일본에서는 유독 큐슈 여행을 갔을때-큐슈 짱이다 고구마 소주 존맛-에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관광지보다는 일반 주거도시로 가서 조용히 지내다가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행기표가 저렴한 후쿠오카로 간 뒤에, 후쿠오카에서 고속버스로 3-40분 가량 떨어진 쿠루메라는 동네에 있는 아침 저녁을 다 주는 여관에서 밥 다 먹고 점심때만 살짝 살짝 나갔다오는 역대 이동거리 최저, 최대 휴식의 여행을 가야겠다고 비행기 출발 전날 결정했다. 원래 미리 계획을 촘촘히 짜면 계획에서 어긋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므로, 후쿠오카에 가본적이 없는 것도 아니라 주요 관광지를 다 가봐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맛있는 일본 밥 먹으면서 2박 3일, 마지막 하루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묵으면서 쇼핑도 좀 하고 오랜만에 나카스 강가나 나가봐야겠다, 하는 정도의 허술한 계획이었다. 얼마나 허술했냐면 마지막 하루 숙박 예약을 그 전날 쿠루메의 여관에서 했으니까.



왜인지 인천공항에서는 국왕 행차를 하고 있었다. 중국 관광객들은 열심히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 중. 와중에 상감마마는 배우분이 알바하시는지 매우 미남이시더라.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 흐리다. 쿠루메(에서도 정확하게는 쥬산부라는 동네)로 가려고 고속버스를 기다리며 한참을 앉아있는다. 나를 제외한 모든 관광객들은 텐진이나 하카타로 나가는 버스를 타려고 줄지어 서 있다. 하기사 쿠루메로 간다는 말에 버스 표를 끊어주는 직원도 친절히 안내는 해줬지만 의아했는지 유학생이냐고 묻고, 일본어로 뭐라뭐라 덧붙이는데 솔직히 유학생이냐고 묻는거밖에 못알아들었다. 관광으로 왔습니다. 라고 하는데 인터넷으로도 쿠루메는 여행갈만한 동네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직원 분의 어색한 미소로 그것을 확정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종류의 어색함을 사랑한다. 관광지를 다니는 관광도 좋지만, 동네 술집에서 어 니가 이동네에 왜 왔지? 하는 표정의 아저씨들에게 이 동네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 설명을 듣는 일은 매우 즐겁다.




이건 보습학원인데, 그냥 내가 학원에서도 일하는 사람이라 신기해서 찍었다. 여기의 학원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정도? 역시 동아시아의 아이들은 수험으로 고통받는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내가 묵은 여관(료칸) 킨스이의 방이다. 가격은 미리 예약하면 더 떨어질수도 있는데 나는 아침+저녁 두끼 포함 1 박에 한국돈 9만원 정도로 예약했다. 밥을 생각하면 꽤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주변에 여행지가 없고 시내로 나가기에 한번 갈아타야 되는 교통을 갖고 있는 숙소이므로 아무에게나 추천하기는 조금 그렇고, 나처럼 밥이나 먹고 동네 산책이나 하고 맥주나 좀 까면 된다는 분들만 추천한다. 참고로 숙소 바로 앞에는 24시간 하는 대형 마트가 있다. 참, 방은 사진에 찍힌게 절반 정도고(다다미 6조로 예약) 뒤로 공간이 좀 더 있다. 욕조도 마련되어 있음.

일본의 경우 료칸에서는 숙소 가격을 1인당으로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명이 간다고 밥값만 추가되는게 아니라 가격은 그냥 두 배가 된다고 보면 된다. (호텔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음) 그래서 왠지 나는 혼자 료칸에 가면 남는 장사를 한 것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료칸에서의 첫 저녁식사 메뉴다. 료칸에 들어가자마자 슬슬 비도 오고 해서 어디 멀리 갈 상황은 못 되었다. 얼른 밥먹고 욕장에서 목욕이나 하고 자야지 했는데, 내가 사진을 대충 찍어서 그렇지 정말 식사가 잘나왔다. 일단 (한국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한 끼에 회랑 소고기를 같이 먹는 일도 그렇지만, 각종 해산물의 선도, 메뉴 하나하나의 디테일-소고기에 버터 얹어서 구워먹는것 버터 상태가 넘 좋아서 개존맛-, (사진은 안찍혔지만) 덴뿌라의 상태 등 흠 잡을데가 없었다. 역시 큐슈는 해산물이다...라고 느끼며 첫날부터 여관에서 판매하는 하이볼을 주문해서 식사와 함께 했다. 날씨는 안좋았지만, 조짐이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 했다. 아니었지만.


여행기(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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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과장 2018. 6. 4. 16:11

심보선


형은 어쩌면 신부님이 됐을 거야.
오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형 생각이 났어.
나이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나한테 자율성이랑 타율성 외에도
신율성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쳐줬어.

신의 계율에 따라 사는 거래.

나는 시율성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해줬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거라고.
신부님이 내 말에 웃었어.
웃는 모습이 꼭 형 같았어.

형은 분명 선량한 사람이 됐을 거야.
나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나보다 어머니를 잘 위로해줬을 거야.
당연히 식구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잠들었겠지.
문들을 다 닫고.
불들을 다 끄고.

형한테는 뭐든 고백했을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형이 우리 중에 제일 슬펐을 텐데.

그래도 형은 시인은 안 됐을 거야.
두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게 시니까 말이야.

이것 봐, 지금 나는 형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형이 이 시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까?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고 할까?
아마도 그냥 말없이 웃었겠지.
아까 그 신부님처럼.

시가 아니더라도 난 자주 형을 생각해.
형이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형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가고
형이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형이 하지 않았던 사랑을 해.

형 몫까지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끔
내가 나보다 두 살 더 늙은 것처럼 느껴져.

그럼 죽을 땐 두 해 빨리 죽는 거라고 느낄까?
아니면 두 해 늦게 죽는 거라고 느낄까?
그건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그런데 형은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모르는 일이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지.
불행이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야.

만약 그랬다면 내가 형보다 더 슬픈 사람이 되고
형은 감옥에서 시를 썼을까?
그것도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 했는데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네.

형 때문에 나는 혼자 너무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됐어.
이것 봐, 지금 나는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시를 쓰고 있잖아.
문들도 다 열어두고.
불들도 다 켜놓고.

형, 정말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형,
응?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문학과지성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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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과장 2018. 5. 27. 17:3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하사탕은 이창동의 두번째 영화로, 바로 이전에 리뷰했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처럼 현대사를 겪어내는 개인의 이야기를 여러 시점에서 조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역순으로 장면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 장면은 1999년, 마지막 장면은 1979년으로 약 20년 정도의 시간 동안 60년생인 주인공 '영호'의 삶을 보여주며 왜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 초반 관객들은 영호의 행동들을 보면서 그가 내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파탄에 이르러서 결국 기차 앞에서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계속 궁금해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거대한 '왜'라는 질문에서 영화가 출발하는 것이죠. 왜 영호는 죽어야 하는가? 무엇이 그를 괴롭게 하여 어릴적 친구들 앞에서 저 난리를 치도록 만들었을까?



결국 영화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관객들은 영호는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한 소녀를 사살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소녀를 사살했다기 보다는, 그 이전의 섬세하며 사진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던 영호 본인의 자아를 파괴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영호는 전역 이후에 경찰이 되는데, 그와 애인관계이던 순임도, 그의 가족들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영호가 5.18을 전후로 얼마나 큰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고문의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의 대변이 손에 묻는 장면에서 그의 손이 더럽혀지는 장면의 상징성은 그 다음 장면에서 순임의 앞에서 홍자(김여진 분)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장면으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영화는 기차가 달리는 장면을 역재생해서 보여줍니다.(언뜻 보면 잘 모르지만, 화면 구석구석 내려야 할 꽃잎이 도로 올라가거나 하는 장면들이 펼쳐지지요) 왜 기차일까요? 기차는 정해진 역, 정해진 선로만 갈 수 있습니다. 현대사라는 거대한 바퀴가 굴러갈때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생존하기 위해 정해진 선로를 따라갈 수 밖에, 열차에 실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릅니다. 자동차라면 자신의 길을 찾아 개척해 나가겠지만요. 경찰 복무 중에 술에 취해 갑자기 군 시절의 트라우마가 폭발한 영호가 자전거를 타고 술집 안을 빙글빙글 도는 장면도 비슷한 의미를 상징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다만 기차와 자전거가 다른 점은, 기차가 정해진 곳만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는 그렇지 않지만, 결국 영호는 자전거를 타고도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맙니다. 이것은 현대사 속에서 폭력을 자행한 영호가 아무런 선택권도 없지는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폭력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의 고발로 읽힙니다. 결국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었다'는 면죄부의 부여가 아니라, '현대사라는 거대한 아픔이 있었지만, 그에게 선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이중적인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영호가 만나는 여인들은, 그 시절의 영호의 모습을 닮아 있는 또 다른 영호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한 여인과의 이별은 영호에게 이전의 영호로부터 작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순수하고 이타적인 순임과 군생활을 기점으로 달라진 영호는 홍자를 선택하고, 홍자와 똑같이 불륜을 저지르지만 홍자의 불륜과 사업실패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영호는 홍자와도 이혼하게 됩니다. 중간에 빠진 여인이 한 명 있는데요, 바로 경아(고서희 분)입니다. 군산에서 순임을 그리워하는 영호를 보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지요. 경아는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본인을 순임으로 여기고 해보라고 하고, 영호는 경아를 '순임씨'라고 부르며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둘은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경아는 선착장에서 영호를 기다리지만, 영호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경아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영호의 거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불행에 대해 스스로 사과할 수 있을뿐,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겁니다.



당시 몇몇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설경구를 장편 영화의 주인공으로 세운 건 주변에서도 많은 만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무한 신뢰가 있었다는군요. 최근 재개봉 기념 인터뷰에서도 설경구는 '영호'가 감당하기 힘든 역할이었다고 털어놓더라구요. 설경구의 연기는 춘사영화제 남우주연상등 당대의 쟁쟁한 상을 휩쓸며 인정받습니다. 사실상 설경구에게 거의 모든 비중이 맞추어져 있는 영화지만, 역시 무명에 가까웠던 문소리나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던 김여진 역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설경구의 호연을 돕습니다.






<버닝>의 종수, <밀양>의 신애, <박하사탕>의 영호 등 이창동의 영화는 구원받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그리고 어찌할 바 모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호는 기차에 뛰어들어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종수는 벤을 죽이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신애는 유괴범을 마음속으로 용서하면, 혹은 죽이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이창동 세계의 영화 철학이 우리에게 가장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박하사탕이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호에겐 잘못을 고칠 시점이, 과거의 영호로 돌아갈 수 있던 시점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덧말. 윤도현밴드의 곡 '박하사탕'은 이 영화의 OST가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 만들어졌다는군요.